조직내 불필요한 일 줄이자며, 불필요한 TF 만들어 또 회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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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2020 新목민심서-공직사회 뿌리부터 바꾸자]
<6> 형식-절차 따지느라 행정력 낭비

지난해 10월 말, 3분기(7∼9월) 성장률이 0.4%로 발표되자 정부 내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연간 성장률이 2%에 못 미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음 날 격주에 한 번이던 혁신성장 전략점검회의를 한 주 앞당겨 소집했다. 긴박하고 절박한 분위기에서 열린 ‘긴급회의’였지만 이날 나온 대책은 여러 부처가 참여하는 ‘서비스산업 혁신기획단’을 만들겠다는 게 전부였다. 정책을 만들기 위해 정책을 만들 조직부터 꾸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해가 밝은 지금까지도 이 혁신기획단은 구성조차 되지 않았다. 고위공무원단은 몇 급을 포함시킬지, 사무관은 몇 명을 넣을지를 정하는 직제 구성부터 막혀 있는 상태다. 기획재정부에는 기획단을 구성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가 꾸려져 임시로 운영 중이다. 국가 경제의 명운이 달린,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정책을 바로 내놓기는커녕 정책을 핑계 삼아 새로운 조직을 꾸린다며 수개월을 아무렇지도 않게 허비하는 모습이 관료 조직의 심각한 비효율을 입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회의를 열기 위해 없는 안건을 개발

기획단 구성이 난항을 겪고 있는 건 거쳐야 하는 절차가 많아서다. 정부 내 새로운 조직을 만들려면 행정안전부와 국무조정실의 협의를 거쳐야 하고 인력과 예산을 받아야 한다. 조직이 만들어진다 해도 각 부처에서 누구를 차출할지를 또 논의해야 한다. 경제 부처 관계자는 “행안부가 새로 조직이 늘어나는 걸 엄격히 관리하고 있고 부처들도 사람을 빼 주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어 협의가 쉽지 않다”며 “정해진 규정과 절차를 거치느라 속도를 못 내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기획단뿐만이 아니다. 실제 정부가 각종 위원회나 TF를 구성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은 보여 주기식 대책에 그칠 때가 많다. 국가 경제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관련 부처 간부들을 소집해 여는 각종 ‘비상점검회의’도 맹탕으로 끝나기는 마찬가지다. 한 경제 부처 공무원은 “당장 무슨 수라도 쓰고 싶지만 각종 규정과 절차에 손발이 묶여 있어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며 “그래도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으니 최대한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바깥에 알리려면 위원회도 만들고 회의라도 열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위원회나 회의가 공무원들에게 또 다른 업무 부담과 비효율을 주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사무관은 “조직 내 불필요한 일을 줄이자며 TF를 구성했는데 이 TF가 하는 일이 계속 회의를 반복하고 실제로 불필요한 일이 줄었는지 평가까지 한다는 것”며 “불필요한 일을 없앤다며 불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회의를 열기 위해 없는 안건을 만드는 일도 잦다.

중앙 부처에서 근무한 지 약 10년이 된 한 사무관은 “안건이 없으면 회의를 안 해야 하는데 지금 공무원 사회는 하루 이틀 전에 회의 일정을 공지하고 회의 안건을 채우라는 지시가 나온다”며 “회의를 열기 위해 회의를 여는 일도 많다”고 말했다.


○ 공직사회의 비효율은 결국 국민에게 피해

물론 공직사회에서 형식과 절차가 중요시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공무원 개인이 재량껏 할 수 있는 범위를 줄여 행정 업무를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관료사회에서는 이런 형식과 절차가 공무원의 행정력 남용을 막는 순기능보다는 정책 결정에 대한 책임 회피를 위해 쓰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또 그에 따른 비효율과 부작용은 공직사회에 다시 부담을 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에서 일하는 9급 공무원 장모 씨는 “전자결재가 있는데도 상사가 항상 대면 보고를 받으려고 한다”며 “전자결재 문서는 따로 만들고, 프린트물을 출력해서 다시 설명해야 하니 일을 두 번 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공무원 김모 씨는 “밤이 되면 PC 전원이 자동으로 꺼져 야근을 하려면 담당 국장에게 야근 허락을 구하는 공문을 따로 만들어 결재를 받아야 한다”며 “일을 하기 위해 일을 하는 꼴”이라고 푸념했다.

이런 공직사회의 비효율은 민원 처리나 규제 해결 지연의 형태로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또 공무원들의 업무 비효율이 민간으로 전이되는 일도 생긴다. 정부와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한 대학교수는 “공무원의 업무 절차를 함께 일하는 민간 전문가들도 따라야 하다 보니 연구에 들여야 할 시간을 문서 작업을 하느라 뺏기는 경우가 많다”며 “공무원의 비효율이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남건우 woo@donga.com·송충현 / 홍석호 기자
#공직사회#업무 비효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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