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택자의 담보대출이나 전세대출 제한이 강해졌지만 공공기관의 거액 사내 대출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12·16부동산대책’의 정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경우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적용 없이 직원에게 최대 2억5000만 원까지 빌려주고 있다.
21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부동산 대책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 36곳의 사내대출 관련 규정을 분석한 결과 20곳(55%)이 대출규제의 ‘우회로’로 활용될 수 있는 사내대출을 그대로 운영하고 있었다.
사내대출은 크게 주택구입자금과 생활안정자금으로 나뉜다. 하지만 생활안정자금도 자금 사용처에 별다른 제한이 없어 주택구입 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다. 두 가지 자금을 동시에 빌려주는 기관은 15곳이었다. 나머지 5곳은 둘 중 하나만 운영하거나 중복 대출을 금지하고 있었다.
20개 기관에서 사내대출을 이용하는 직원은 2018년 기준 5430명으로 전체 직원(5만1404명)의 10.6%였다. 주택구입자금과 생활안정자금 대출 인원은 각각 285명, 5145명이었다. 대출 규모는 187억 원, 1027억 원이다. 가장 많은 자금을 빌려주는 기관은 아파트 분양가 심사를 담당하는 국토부 산하 주택도시보증공사였다. 주택구입자금과 생활안정자금을 합해 2억5000만 원까지 빌릴 수 있다.
사내대출에는 LTV나 DSR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각종 대출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그 재원이 기관의 예산이나 사내근로복지기금이기 때문이다. 주택구입자금 대출 시 근저당권을 설정하면 LTV 규제가 적용되긴 하지만 이런 규정을 둔 기관은 한국주택금융공사, 신용보증기금,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조폐공사, IBK기업은행 등 5곳뿐이다. 이 기관들에서도 생활안정자금은 보증보험서만 내면 대출이 가능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내대출은 기관이 채권자, 직원이 채무자인 개인 간 대출과 다름없어 관리 감독의 영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내대출 금리는 적게는 2%에서 많게는 6.7%에 달했다. 금융기관에서 돈 빌리기가 어렵지 않던 과거에는 굳이 시중은행보다 비싼 이자를 내고 사내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12·16대책으로 돈줄이 막히면서 사내대출이 대출규제를 피할 수 있는 합법적인 우회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에서 10억 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금융기관에서 빌릴 수 있는 대출금은 최대 3억6000만 원인데, 사내대출을 받으면 LTV 한도보다 많은 주택구입자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한 지점장은 “주택 구입 시 대출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사내대출을 받는 건 매우 큰 무기”라고 말했다. 대다수 공공기관의 사내대출 규정이 느슨하다 보니 사내대출을 받아 15억 원 초과 주택을 사거나, 신규 전세보증금 대출이 막힌 9억 원 초과 주택 보유자가 전세보증금에 보태도 막을 수 없다. 주택구입자금 대출을 해주는 공공기관 가운데 고가 주택(9억 원 초과) 구입을 막는 규정이 있는 기관은 신용보증기금과 HUG 등 두 곳뿐이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환할 능력이 있어도 일반 국민은 대출을 못 받고 있는데 공공기관 직원들만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을 관리 감독하는 기재부가 정한 지침에는 ‘공공기관의 복지제도는 사회 통념상 과도해선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대기업 계열사나 공무원과 비교해도 공공기관의 사내대출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국내 4대 그룹 주요 계열사 4곳 중 사내대출을 운영하는 기업은 단 1곳이었다. 대출 한도도 5000만 원에 불과했다. 2곳은 시중은행에서 대출 시 금리만 지원했고 나머지 1곳은 아예 사내대출 자체가 없었다. 공무원은 공무원연금공단의 연금대출을 통해 7000만 원까지 빌릴 수 있다. 하지만 예상 퇴직급여 50%를 초과할 수 없어 실제 대출금은 근속연수에 따라 7000만 원보다 더 적다. 기재부 관계자는 “사내대출이 대출규제 우회로로 활용되는지 예의주시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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