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 경제성장률이 전년대비 2.0%에 턱걸이하며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9년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우리나라에서 경제성장률이 2%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80년대 이후 큰 위기가 닥쳤던 3차례(석유파동, 외환위기, 금융위기)에 불과하다. 특별한 ‘위기’가 없는 상황에서 구조적인 위기를 드러난 성적표여서 저성장의 심각성을 더한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경제 규모가 커지며 과거보다 낮은 성장은 당연하지만 하락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지적한다. 저성장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수출에만 의존하는 산업 구조를 개혁하고, 민간 경기를 살릴 수 있는 과도하고 미래지향적인 규제 완화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해 신산업 출현을 막는 기득권을 조정하거나 개혁하기 위한 정치력이 절실하다고 했다. 이를 통해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가속화되는 저성장 고착화를 최대한 지연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중분쟁과 반도체 경기 부진이 韓엔 ‘위기’ 수준으로 충격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전년보다 2.0% 증가했다.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보면 2.01% 성장해 간신히 2%대 성장을 지켰다. 이는 금융위기를 겪었던 2009년 0.8% 이후 1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최근 10년간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0년 경제성장률은 전년 기저효과로 6.8% 성장한 뒤 2011년(3.7%) 3%대 후반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그 이후에는 2%대 중후반에서 3%대 초반 사이를 오갔고 지난에는 간신히 1%대 추락을 모면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0%를 밑돈 것은 80년대 이후 1980년(-1.7%·제2차 석유파동), 1998년(-5.5%·외환위기), 2009년(0.8%·금융위기) 3차례뿐이었다.
지난해에 특정할만한 ‘위기’가 없었는데도 2% 사수가 힘겨웠던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반도체에만 거의 유일하게 의존하는 취약 수출 경제구조를 지목했다. 조선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강했던 전통 제조업들이 장기간 침체하면서 미중 무역분쟁과 반도체 경기 부진이 겹친 지난해에 과거 ‘위기’ 수준의 충격을 받았다는 분석이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미중무역 분쟁으로 전세계적 교역 여건이 안 좋은 데다 반도체에 집중된 낮은 수출 경쟁력 탓에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진단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4차산업혁명의 핵심 요인을 활용해야 하는 신산업이 겹겹의 규제에 묶여 출현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 정책 등에 따른 반기업 정서로 혁신의 또다른 축인 기업가 정신이 되살아나지 못하는 것도 경제 활력이 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 한몫하고 있다.
올해 반도체 경기가 반등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로 높여잡았지만 정부의 과감한 친시장적 개혁 조치 없이는 저성장 가속화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금주도 성장’ 한계…“기업 복돋아야”
지난해에는 ‘재정·세금주도 성장’이란 비판이 나올 만큼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주체별 성장기여도를 살펴보면 민간은 0.5%p, 정부가 1.5%p였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성장의 75%를 담당한 것이다. 정부 성장기여도가 민간 성장기여도를 앞지른 건 2009년 이후 10년만에 처음이다.
반면 민간소비 증가율은 1.9%에 그쳐 2013년(1.7%) 이후 6년만에 가장 낮았다. 수출 증가율도 1.5%에 불과해 2015년(0.2%) 이후 4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건설 및 설비 투자 부진도 이어졌다. 건설투자는 3.3% 줄며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민간 투자는 경제성장률을 1.1%p나 갉아먹었다.
김 교수는 “노동 유연성을 전제한 산업 구조조정, 산업 혁신 등이 이뤄져야 한다”며 “현재 우리는 조선업이 돌아온다며 반기고 있지만, 전세계는 재생에너지를 키우며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 교수도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저성장으로 가는 건 자연스럽지만 우리나라 경제규모의 14배인 미국이 2%대 성장을 하는 것과 비교하면 하강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정부에 의한 성장은 한두해 가능하지만 지속되기 어려운 만큼 규제 완화, 투자 활성화로 기업을 복돋아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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