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합의 조짐에 유가 소폭 올랐지만
코로나 불확실성 언제 끝날지 몰라 석유수요 줄어 ‘마이너스 마진’ 계속
정유4社 공장 가동률 80%대로 뚝… 업계 일각 대규모 구조조정설도
“마른수건을 부여잡고 계속 쥐어짜는 꼴이다.”
11일 국내 정유업계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부터 업황이 워낙 좋지 않아 할 수 있는 모든 대응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유가 폭락 사태까지 덮쳤기 때문이다. 10일(현지 시간)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안에 반대했던 러시아가 감산 합의를 시사하면서 유가는 소폭 반등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6일과 9일 30% 이상 떨어진 유가 급락의 충격파는 아직 남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가 폭락은 2008년과 2014년에도 있었다. 2008년 갑작스레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에 수요는 쪼그라들었고 배럴당 130달러 선이었던 유가는 40달러대까지 떨어졌다. 2014년엔 미국의 셰일가스 산업을 둘러싼 에너지 패권전의 형태로 발발된 ‘유가 전쟁’으로 100달러대 유가가 30달러 선까지 붕괴됐다. 그때마다 국내 정유업계도 직격탄을 맞아 2008년 4분기(10∼12월) 국내 정유 4사는 총 3900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2014년에는 4분기 영업손실이 1조1500억 원에 이르렀다.
업계에서는 이번 유가 폭락이 글로벌 경기 둔화와 산유국 간 에너지 패권전 측면에서 과거 사례를 닮았지만 코로나19라는 또 다른 변수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고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유가가 떨어지면 국내 정유업체는 ‘재고평가손실’을 떠안게 된다. 정유사가 이미 사들인 원유가 한국에 도착하기도 전에 가격이 떨어져 버릴 경우 손실이 생길 수밖에 없다. 원유가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중동 기준 약 3주(23∼24일), 미국 기준 5∼6주 걸린다. 그렇다고 이미 확보한 원유가 답인 것도 아니다. 공장에서 정제 중인 제품 가격이 떨어지고, 판매를 앞두고 저장돼 있는 제품까지 모두 가격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유사 실적과 직결되는 정제마진도 ‘마이너스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 및 설비운영비 등 제반 비용을 제외한 것이다. 앞선 두 차례의 위기에선 유가는 떨어졌지만 제품 가격은 덜 떨어지거나 올랐기 때문에 정제마진이 개선되는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제품 가격까지 동시에 떨어졌다.
지난해 10월 이후 손익분기점 수준인 배럴당 4달러대 이하로 떨어진 정제마진은 12월 마이너스까지 갔다가 연초 회복할 기미를 보였다. 그러다 코로나19 사태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정제마진은 다시 배럴당 1.4달러까지 하락했다. 공장을 돌리면 돌릴수록 손해가 나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 정유 4사의 정제공장 가동률이 80%대 초반까지 떨어진 것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제품 가격이 떨어져도 수송용 수요 등이 꾸준히 있었다면 이번에는 산업이 돌지 않고 이동도 하지 않으니 석유 수요 자체가 떨어졌다.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정유업계 일각에서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관건은 코로나19 사태가 언제 개선되느냐다. 올 하반기에 상황이 나아지면 휘발유 소비량이 늘고 코로나19가 완화되면서 항공유 수요도 늘어나는 등 차츰 소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내 정유사 관계자는 “결국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얼마나 해소되느냐에 정유사들의 명운이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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