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서 ‘타다’까지 미래를 위해 뛰었지만…이재웅 씁쓸한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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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3월 15일 0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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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웅 쏘카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여객자동차 운수 사업법 위반 선고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 News1
이재웅 쏘카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여객자동차 운수 사업법 위반 선고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 News1
1995년 포털 ‘다음’을 만든 창업자는 2007년 대표직을 내려놓는다. 그후 10년간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후배 육성에 전념했다. 이 과정에서 ‘모빌리티’의 미래를 본 그는 차량공유 서비스 ‘쏘카’에 투자했고 뛰어난 빅데이터 처리능력을 갖춘 브이씨앤씨(VCNC)를 인수해 차량호출 서비스 ‘타다’를 출시했다. 하지만 10년의 은둔생활을 접고 경영일선에 복귀한지 2년만에 또 다시 대표직을 떠난다. 이재웅 대표의 이야기다.

이재웅 대표는 ‘사업가’보다 ‘혁신가’라는 호칭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다. 넥스트(NEXT)를 뜻하는 다음을 창업했고 전세계가 주목하는 모빌리티 혁신에 투신, ‘미래’를 열고자 했지만 기득권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다음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재웅 대표는 2014년 다음 지분 전량을 카카오에 매각한 후 소셜 벤처 투자자로 지내왔다. 그는 신생기업 육성기업 ‘소풍’을 창업하고 소셜 벤처기업에 투자했다. 소풍은 긱블(공학 엔터테인먼트 그룹) 등 63개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다. 이 기업들의 총 기업가치는 1조13억원에 달한다.

그러나 소풍의 대표 포트폴리오는 ‘쏘카’다. 쏘카는 다음 출신 김지만 대표가 지난 2011년 다음 본사가 있던 제주도에서 시작했다. 김 대표는 규제를 맞추기 위해 차량 100대를 구매해야 했는데 이 비용을 이재웅 대표가 댔다. 쏘카는 그가 모빌리티 시장에 관심을 갖게 한 결정타로 작용했다.

결국 이재웅 대표는 지난 2018년 4월 쏘카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하며 경영인으로 복귀했다. 20대때 다음 창업에 뛰어든 그때의 열정이 되살아났다. 모빌리티 혁신에 미래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취임 직후 “쏘카를 기술 및 데이터 기반의 종합 모빌리티 기업으로 진화시키겠다”며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후 4개월만인 지난 2018년 8월 쏘카는 VCNC를 인수했다. 당시 VCNC는 커플 전용 소셜미디어 ‘비트윈’을 개발·운영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VCNC의 국내·외 사업역량과 데이터 처리능력 등을 높게 평가했다고 전해진다. 업계는 비트윈의 주 이용자가 20대~30대라는 점에서 그가 ‘타다’의 사업확대를 염두하고 인수를 추진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 타다는 2030세대로부터 가장 큰 호응을 얻었다.

벤처 1세대로 국내 포털 서비스를 이끌어온 이재웅 대표는 박재욱 대표와 ‘타다’로 모빌리티 시장을 선도하기 시작했다. 택시보다 비싸지만 넓고 쾌적하고 ‘이동’에 초점을 맞춘 11인승 승합차에 이용자들은 열광했다. 타다는 출시 9개월 만에 100만명의 이용자를 모았다.

입소문으로 몸집을 불려가던 타다는 지난해 택시업계와 부딪히며 삐걱대기 시작했다. 서울개인택시조합 이사장 등 전·현직 간부는 지난해 2월 이재웅 쏘카 대표와 박재욱 VCNC 대표를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여객운수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택시업계는 타다가 운수사업에 필요한 국토교통부 장관의 면허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10월 검찰이 여객운수법 위반 혐의로 이재웅 대표, 박재욱 대표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같은 달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타다’식 렌터카 운행을 금지하는 여객운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타다는 더 큰 위기에 빠졌다.

이재웅 대표는 타다 서비스를 막는 정부와 정치권에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왔다. 기존 시장을 뒤집는 혁신산업과 기득권을 가진 전통산업이 스스로 손을 잡는 건 애초에 불가능 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올해 초 택시업계와 타다의 갈등의 불씨는 검찰과 타다의 갈등으로 옮겨갔다. 검찰은 지난 2월 ‘타다를 운영하며 관련 면허 없이 사실상 택시 영업을 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재웅 대표, 박재욱 대표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사법부는 결국 타다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월 타다와 이재웅 쏘카 대표 등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대표는 1심 결과에 대한 홀가분한 기분을 “오늘 다시 청바지를 입었다”고 표현하며 사업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내비쳤다.

이 대표는 ‘타다금지법의 국회 통과를 막아달라’며 타다에서 얻을 이익은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지난 2일 “타다의 최대주주로서 앞으로 타다가 잘 성장해 유니콘이 되거나 기업공개가 돼 내가 이익을 얻게 된다면 그 이익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국회는 지난 6일 본회의에서 타다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법안 통과 직후 VCNC는 사업 축소를 예고했다. VCNC는 자금난을 이유로 11인승 승합차 호출 서비스 ‘타다 베이직’을 오는 4월10일까지 종료한다고 안내했다. 오는 4월1일로 예정됐던 타다 기업 분할 계획도 철회했다.

이재웅 대표는 13일 쏘카 대표 이사직을 내려놨다. 쏘카 대표 자리는 박재욱 VCNC 대표가 맡는다.

이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졌다. 책임을 지고 쏘카 대표이사직을 사임한다”며 “나의 사임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지만, 반대로 내가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는 언제나 혁신해왔고 언젠가는 기득권도 물러날 수밖에 없다”며 “다음 세대에게 짐을 줘 면목없지만 다음 세대에서는 지속가능한 혁신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이재웅 대표가 다음 경영을 내려놓은 뒤 ‘소풍’으로 벤처업계와 소통하며 기업 경영에 대한 야망이 다시 불탔고 그 힘으로 쏘카와 타다를 키웠다”며 “지난 2년간 모빌리티 혁신을 위해 투신한 그의 꿈이 또다시 꺾이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이 대표는 쏘카 대표직을 내려놓으며 “다음 세대에선 지속가능한 혁신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믿으며 나도 온 힘을 다해 옆에서 돕겠다”고 말했다.

소풍 시절처럼 투자업계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대해 타다 측은 “이 대표의 사임 이후 거취는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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