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와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간 소통 채널이 있다. 이전에도 양국 간 통화스와프 체결 논의가 있었지만 최근 금융시장이 안 좋아지자 이 총재가 더욱 강하게 요청했다. 수장 간 합의가 이뤄진 후 발표까지 실무는 단 며칠이었다”
한은에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실무를 이끈 유상대 부총재보(국제담당)가 설명한 막전 막후다. 600억달러의 한미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패닉에 빠졌던 금융시장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2014년부터 한은을 이끌고 있는 이 총재가 뚫은 숨구멍이다.
이 총재는 지난 16일 코로나19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크게 흔들리자 12년 만에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0.75%로 인하한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는 상당히 훌륭한 안전판이 되는 게 사실이지만, 상대국이 있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어떻게 할지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구체적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이 총재는 지난달 22~23일(현지시각)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 기간 파월 연준 의장과의 단독 면담에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논의를 본격화했다.
이 총재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발표 다음 날인 20일 출근길 기자들과 만나 “사우디 리야드 양자회담에서 한국의 금융시장 상황, 그리고 당시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적 영향 등을 상당 기간 자세히 이야기를 나눴다”며 “한국의 시장 상황에 대해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신속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의 핵심은 말미에 나와있다. 이 총재와 파월 의장 간 수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소통 채널이 이미 구축돼 있었다. 이 총재는 “제가 국제결제은행(BIS) 이사회의 같은 멤버니까 수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라인이 돼 있어 아무래도 협의하기 좋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 2018년 11월 BIS 이사회의 신임 이사로 선임됐다. 그는 한국이 1997년 BIS에 가입한 후 배출한 첫 이사로 한국 금융권에 한 획을 그었다. 이 총재가 BIS 이사회 이사로 선임된 건 2014년부터 BIS 총재회의와 주요 현안 논의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지난 2014년부터 한은을 이끌고 있다. 지난 2018년 3월 1974년 김성환 전 총재 이후 44년 만에 연임한 한은 총재다. 1998년 전까지 한은 총재가 금통위 의장이 아니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첫 연임 사례다. 결국 그가 오랜 시간 한은을 이끌며 국제사회에 기여한 점이 우리나라가 위기를 맞았을 때 빛을 발한 셈이다.
이 총재가 ‘핫라인’을 가동해 파월 의장과 통화스와프 체결을 결정지은 후 발표까지 걸린 시간은 단 며칠에 불과했다. 실무진들은 코로나19 탓에 대면협의가 어려운 만큼 콘퍼런스콜, 이메일 등 비대면 소통 수단을 총동원했다.
유 부총재보는 “방향이 정해진 상황에서 실무 협의가 길어질 이유가 없었다”며 “2008년 양국 간 통화스와프 체결 경험이 있어 보다 수월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한미 통화스와프는 2008년 10월30일 체결했던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계약 규모는 600억달러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체결 규모의 두 배다. 유 부총재보는 “우리는 달러화 부족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액수를 꺼내진 않았지만 스와프체결 규모가 클수록 좋다고 했다”며 “연준이 고민 끝에 우리나라 등 6개국과는 600억달러, 나머지 3개국과는 3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를 맺었다”고 말했다.
연준은 이번에 우리나라 외에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멕시코 중앙은행, 싱가포르 통화청과도 동시에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었다. 최근 급격히 악화된 글로벌 달러 자금시장의 경색 해소하기 위해서다.
이 총재는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과정을 “미국이 신속하게 움직인 것은 기축통화국으로서, 그리고 기축통화국의 중앙은행으로서 리더십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라고 정의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파월 의장의 신속한 결정에 대해 대단히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치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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