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권력을 갖고 있는 한국은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보다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시장 유동성 공급에 나서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0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권 조찬간담회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유동성 지원과 관련해 한은이 애써주신 것에 감사한다”면서도 “하지만 아직 한은의 문제의식이 안일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이례적으로 쓴소리를 했다.
이 회장의 발언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산은의 역할이기도 한 기업 지원에 있어서 중앙은행이 더 힘써야된다는 취지”라며 “기업에 직접 자금이 들어가도록 다른 중앙은행에선 회사채 매입 등을 실행하고 검토하고 있는데 한은도 더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산은은 긴급한 자금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회사채를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최근 기업어음(CP)에 이어 머니마켓펀드(MMF) 매입을 결정했다. 양적완화에 또다시 나선 셈이다. 일본 중앙은행은 상장지수펀드(ETF) 매입 목표액을 연간 6조엔에서 12조엔으로 늘렸다. 자금이 필요한 기업을 직간접적으로 빠르게 지원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한은도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환매조건부채권(RP) 대상 증권에 은행채 포함, 국고채 단순매입 등을 실시했으나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이 내놓고 있는 유동성 공급안이 선제적이지 못하고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금융권 안팎에선 예상보다 규모가 작은 것으로 평가되는 채권시장안정펀드(10조원), 증권시장안정펀드(미정) 등에 대한 한은의 유동성 지원이 소극적이고, 이미 양적완화에 돌입한 다른 주요국과 달리 발권력을 아끼고 있다고 지적된다.
한은법상 한은이 매입할 수 있는 자산은 국채, 정부보증채, 금융통화위원회가 정한 유가증권이다. 금통위 의결만 거치면 CP, MMF 등 위험자산까지 매입할 수 있다.
금융시장 한 관계자는 “한은의 금리인하 뒷북 대응도 논란이었지만 우리가 기축통화국이 아닌 이상 한은은 애로사항이 있을 수 밖에 없다”며 “하지만 발권력을 활용하는 건 다른 차원인데, 위기 상황에서 한은은 항상 뒤따갔지 선제적인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실물에서 금융으로 위기가 전이되는 건 금방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최근 발행이 잘 안되고 있는 기업의 회사채 등으로 RP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금리인하만으로는 지금의 기업, 가계 유동성 부족을 해결하기 어려우니 유동성 공급을 늘릴 필요가 있다. 한은이 할 수 있는 건 중소기업대출자금 확대와 양적 완화에 준하는 방법으로 회사채를 매입해주는 방법이 있다”며 같은 의견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기업들의 유동성 공급하기을 위해선 유동성 부족을 겪고 있는 회사채를 매입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채권 투매가 일어나고 있는 만큼 한은이 이런 방법들을 쓸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6일에 이어 이날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관련 약식 브리핑에서 “적어도 금융기관이 유동성 부족으로 제 역할을 못하는 일을 막고 신용경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위기시 중앙은행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 한은이 할 수 있는 정책수단 카드를 모두 테이블에 올려놓고 상황에 맞게 쓸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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