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 한방울로 유전자 분석… “맞춤진료 문턱 낮출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7일 03시 00분


[미래 개척하는 청년창업가들]<3> ‘제노플랜’ 강병규 대표

강병규 제노플랜 대표가 서울 서포구 본사에서 이달 초 출시한 깔때기 모양의 타액 채취 키트와 24명의 유전자 분석 결과를 담은 칩을 들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한 결과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강병규 제노플랜 대표가 서울 서포구 본사에서 이달 초 출시한 깔때기 모양의 타액 채취 키트와 24명의 유전자 분석 결과를 담은 칩을 들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한 결과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제공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침 한 방울로 자신이 유전적으로 취약한 질병을 미리 알고 예방하며, 아픈 곳이 생기면 자신의 유전적 특성에 맞게 치료를 받는 맞춤형 진료의 시대. 개인 유전자 분석업체 ‘제노플랜’은 이처럼 먼 미래에나 가능하다고 여겼던 의료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유전자 빅데이터를 차곡차곡 쌓고 있다.

강병규 제노플랜 대표(39)는 2014년 제노플랜을 창업했다. 개인이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분석을 의뢰하는 ‘소비자 직접 의뢰(DTC)’ 유전자 분석 서비스가 해외에서 급성장하는 것을 보고 국내에서 DTC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시도한 것이다.


당시 국내에서 모든 유전자 분석은 의료기관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비용도 100만 원 수준이었다. 미국에서는 2000년대부터 DTC 유전자 분석 서비스 전문업체가 등장하면서 10만 원대로 개인이 직접 유전자 분석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강 대표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사람들이 더욱 건강한 삶을 계획하도록 돕고 의료비용을 낮추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에 완전히 매료됐다”고 창업 당시를 돌아봤다.

미국 보스턴대 의예과를 거쳐 보스턴의학대학원에서 의과학을 전공한 강 대표는 기술로 소득 격차를 해소하는 사회적 기업가를 꿈꿨다. 전공을 살려 2008년 삼성생명과학연구소 유전체연구센터에 입사했지만 3년 만에 퇴사하고 취약계층 청소년을 위한 온라인 공부방 ‘알공’을 차렸다. 수익이 제대로 나지 않고 사업 확장이 더디자 3년 뒤 알공을 접고 두 번째로 도전한 사업이 제노플랜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 DTC 사업은 불법이라 해외로 눈을 돌려야 했다. 가장 먼저 진출한 국가가 일본이었다. 일본에서는 기업들이 사내 복지로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할 정도로 대중화돼 있었다. 제노플랜은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드는 개인 고객(B2C)보다 기업 고객(B2B)을 집중 공략했다. 고객 맞춤형 상품을 설계하려는 보험판매회사나 유전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신약개발 비용을 낮추고 효과를 높이려는 제약사, 화장품 회사까지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기업 고객들이 제노플랜을 찾았다. 이들 기업은 유전자 진단키트를 자사 고객에게 보냈고, 제노플랜은 그 고객들의 타액이 들어 있는 키트를 수거해 유전자 분석을 진행했다. 고객들이 직접 입력한 가족력, 생활습관과 최근 의료연구 결과를 토대로 인공지능(AI)이 유전적으로 취약한 질병부터 탈모나 비만 가능성 등을 분석했다. 예컨대 ‘당신과 유사한 유전자형, 가족력, 생활환경을 가진 사람의 폐암 발병 가능성은 아시아인 평균 발병률보다 2.79배 높다’는 식이다. A4용지 1000장 분량의 분석 결과는 전용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제공한다.

강 대표는 기업 고객 시장에 집중해 아낀 마케팅 비용을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했다. 제노플랜이 분석하는 유전자 항목은 500여 가지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비용은 여느 분석 업체와 비슷한 10만 원 수준이다. 일반인이 분석 결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래프와 그림을 활용하고 자체 개발한 타액 샘플키트를 출시하는 등 고객 사용성을 높이는 데에도 주력했다.

제노플랜 매출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2.5배씩 성장하고 있다. 내년에는 실제 진료에 활용할 수 있을 만큼 정밀한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맞춤형 건강관리 정보를 단순히 조언하는 수준을 넘어 2013년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유방암 예방을 위해 수술을 받은 것처럼 유전자를 활용한 진료 영역이 더 넓어지는 셈이다. 이런 미래의료가 가능해지려면 유전자 빅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서양에서 먼저 시작하면서 현재 인류가 확보한 유전자 정보의 80% 이상은 백인으로 인종적으로 편향돼 있다. 강 대표는 “아시아인의 유전자 정보를 가장 빨리, 가장 많이 모은 유전자 분석 업체가 되는 것이 목표”라며 “이로써 인류가 하루빨리 맞춤의료 시대를 열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전자 빅데이터와 AI가 결합하는 미래에는 양질의 의료를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맛을 내는 맥도날드처럼 의료 서비스도 그렇게 바뀔 것”이라고 미래를 전망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제노플랜#강병규 대표#유전자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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