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들이 역대 최대 규모의 감산 방안에 합의하며 일단 급한 불은 껐다는 안도감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제 유가가 당장 반등할 것이라는 전망은 힘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글로벌 원유 수요가 크게 감소한 상황에서 공급 과잉을 해소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는 분석이 많다. 이에 따라 올해 1분기(1~3월) 최대 2조5000억 원대 적자가 예상되는 국내 정유사는 물론 유가 하락으로 타격을 받은 업종들의 상황이 당장 개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 970만 배럴 감산에도 여전한 공급 과잉
13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OPEC플러스(석유수출국기구와 10개 주요 산유국 협의체)는 긴급 화상 회의를 통해 하루 970만 배럴을 감산하기로 합의했다. 멕시코의 반발로 당초 OPEC플러스가 합의했던 감산량 1000만 배럴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미국이 멕시코 몫을 떠안으면서 협상이 이루어졌다.
사상 최대 규모 감산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시장의 반응은 실망에 가까웠다. 이날 미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은 오전 중 7% 넘게 올랐으나 이후 상승폭이 1%대로 떨어졌다. OPEC은 코로나19의 글로벌 대유행으로 4월 세계 원유 수요가 15%, 일평균 약 2000만 배럴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OPEC플러스와 미국 등 비(非)OPEC 회원국의 감산 예상치를 다 합쳐도 1500만 배럴 수준에 그친다. 블룸버그는 “감산량이 너무 작고 (합의 시기가) 너무 늦었다. 합의가 발효되는 다음달 1일까지 3주 간 원유 가격은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리 감산’을 약속한 미국이 이를 실행할지도 미지수다. 미국은 석유 산업의 특성상 정부가 산유량을 강제할 수 없으며, 대신 수요와 투자가 줄면 생산량도 자연적으로 감소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미국이 추가적인 감산에 실제로 나설 것인지, 이를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에 대해서 정해진 바가 없다”고 전했다.
● 저유가 상당 기간 지속…국내 정유사 충격
이번 합의로 국제유가가 폭락과 폭등이 반복되는 모습은 다소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리스태드에너지 분석가 퍼 마구스 니스인은 12일(현지 시간) CNBC에 “이번 협상은 에너지 산업과 세계 경제에 대한 일시적으로 최소한의 도움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공급 과잉이 쉽게 해소되기 어려운 만큼 유가가 쉽게 반등하지는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올해 3분기(7~9월)까지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20달러 선에 머물다가 4분기(10~12월) 들어서야 32.5달러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심혜진 삼성증권 연구원 “원유 상품 재고도 많다. 국제유가는 상당기간 배럴당 30달러를 하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저유가로 인한 충격이 국내 산업계에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는 1분기 2조 원대 적자가 예상되고 있다. 또한 저유가로 실적과 직결되는 정제마진(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공장 가동비 등을 뺀 비용)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2분기는 물론 연간 실적도 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조선업도 저유가와 세계 경제 침체의 영향으로 산유국 등에서의 선박 발주 연기나 취소 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석유화학업계의 경우 유가 하락으로 마진이 다소 개선됐지만 글로벌 수요가 줄어들면서 저유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통상 저유가 수혜 업종으로 꼽혀온 여행 항공업은 인적 이동이 제한되면서 오히려 고사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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