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세탁 스타트업 ‘의식주컴퍼니’의 세탁공장. 허름한 외관과 달리 공장 내부에는 최신 설비가 빼곡했다. 컨베이어벨트에 걸린 외투, 셔츠, 수건, 속옷 수천 벌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세탁물 운반부터 분류와 수건을 접는 것까지 전체 공정의 70%가량을 사람이 아닌 기계가 대신한다. 공장 입구에는 이날 새벽 서울과 경기 고양시 일산의 가정 700여 곳에서 수거한 전용 수거함 수백 개가 줄지어 있었다. 이 수거함들은 이날 밤 12시까지 각 가정으로 다시 배송된다.
의식주컴퍼니는 지난해 3월 국내 최초로 비대면 모바일 세탁 서비스 ‘런드리고’를 내놓았다. 스마트폰으로 서비스를 신청하고 오후 11시 전에 집 밖에 세탁물을 내놓으면 수거, 세탁, 다림질까지 마친 뒤 다음 날 밤 12시까지 배송해 주고 있다. 가정에서 세탁기를 돌리거나 동네 세탁소에 옷을 맡기고 찾아야 했던 가사노동에서 바쁜 현대인을 해방시켜 소비자에게 ‘세탁 없는 일상’을 만들어 주겠다는 꿈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조성우 의식주컴퍼니 대표(39)는 이번이 두 번째 창업이다. 2011년 현대중공업을 퇴사한 그는 소셜커머스 업체 ‘덤앤더머스’를 창업했다. 사업 아이템을 신선식품 배송으로 바꾸고 국내에서 처음 새벽배송을 시작했다. 2015년 배달 애플리케이션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에 회사를 매각하고 사명을 ‘배민프레시’로 바꾼 뒤 2017년까지 대표를 맡았다. “7년간 쉬지 않고 에너지를 쏟다 보니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다시는 창업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조 대표를 다시 창업으로 이끈 건 미국 여행에서 차량털이를 당한 게 계기였다. 세탁물 빼고 모든 소지품을 잃어버린 경험에서 ‘세탁물을 집 밖에 내놓아도 잃어버리지는 않겠다’는 힌트가 계기가 됐다. 신선식품 배송사업을 했던 그의 눈에 국내 세탁 산업은 혁신과는 거리가 먼 분야였다. 물빨랫감은 세탁기로 돌리고 집에서 빨기 어려운 세탁물은 동네 세탁소에 맡기고 찾아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2015년 국내에 온라인 세탁 수거 및 배송 서비스가 나왔지만 예약시간에 맞춰 배송기사에게 세탁물을 전달해야 하는 불편함은 여전했다.
그는 이런 문제를 잠금장치가 달린 전용 수거함 ‘런드렛’으로 해결했다. 평소에는 집에서 세탁 수거함으로 쓰다가 서비스 신청 후 통째로 집 밖에 내놓으면 된다. 배송기사와 따로 시간 예약을 잡거나 마주칠 필요가 없어 비대면 세탁 서비스가 가능했다.
의식주컴퍼니는 동네 세탁소에 맡기던 드라이클리닝용 의류뿐만 아니라 주로 집에서 직접 빨던 물빨랫감까지 처리하고 있다. 단가가 싼 세탁 서비스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세탁 품질을 고르게 유지하기 위해 세탁공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주문량은 지난해 3월 출시 이후 월평균 30%씩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언택트 소비’가 확산되면서 지난달 주문량은 전월보다 50% 가까이 늘었다. 전체 이용자의 약 40%가 월 4만∼6만대의 정액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조 대표는 모바일 세탁서비스가 세탁기 발명에 버금갈 만큼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고 있다. 가사노동을 줄여 여성을 해방시킨 세탁기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꼽힌다. 그는 “모바일 세탁 서비스를 이용하면 세탁하는 데 2분이면 충분하다”며 “세탁에 쓰던 시간을 더 가치 있는 일에 사용할 수 있고 세탁기를 사지 않아도 되는 만큼 주거 공간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명을 의식주컴퍼니로 정한 것도 이런 회사의 비전을 담은 것이다.
조 대표는 머지않아 ‘가사노동의 외주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내다봤다. 1인 가구와 맞벌이의 증가,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외주의 대상이 될 가사노동은 요리와 청소, 육아 등 전체 가사노동으로 확장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가사노동의 외주화를 경험하는 가정을 늘려 되돌릴 수 없는 사회적 변화를 만들고 싶다”며 “미래 사회는 개인이 자신이 가치 있어 하는 일에 더 집중하고, 가사노동은 전문가나 기계에 맡기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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