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두 달여 만에 신성통상·신원 등 중소 패션업체들이 일제히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매출만 놓고 보면 여행·숙박업의 타격이 더 크지만 인력 구조조정 한파는 패션업계에 가장 먼저 불어닥쳤다.
이처럼 중소 패션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해외의존도가 높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의 사업 구조적 한계 때문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패션업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후순위로 밀렸고 패션산업 특성상 ‘고용유지지원금’을 받기 어려운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해외 사업 부진이 패션업계 구조조정 방아쇠 당겨
1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제품 불매운동’ 영향으로 지난해 신성통상 패션사업부의 SPA 브랜드인 탑텐은 36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하지만 구조조정을 단행한 수출사업부의 영업이익은 35억원에 그쳤다. 연초 코로나19 여파로 수출이 급감하면서 수출사업부의 1분기 영업이익은 더 악화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신성통상 해외수출 사업부는 전체 매출에서 약 4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하지만 해외 의존도가 높은 탓에 업계에서는 인력 감축은 ‘예견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결국 220여명의 수출사업부 직원 가운데 10%에 해당하는 20여명의 직원들이 정리해고됐다.
이처럼 코로나19 확산 두 달여 만에 구조조정에 돌입한 이유로는 OEM 사업의 ‘구조적 위험성’이 꼽힌다. 해외 수출에 의존하는 OEM 사업은 수출국의 시장 변동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과 유럽이 코로나 19로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으면서 국내 패션업계도 ‘도미노 타격’을 받았다.
실제로 이들 지역 바이어들은 코로나19로 경기 상황이 나빠지자 국내 패션업체들에 선적 보류 및 주문 취소 등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패션기업 S사 관계자는 “일부 바이어들은 결제 받아야 하는 대금인 원부자재 비용도 납부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패션업계 시황이 급격하게 나빠지고 있다”면서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거래를 지속해야하는 업체들인 만큼 미래를 고려해 소송을 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결국 패션업체들의 잇단 구조조정에 ‘터질게 터졌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미 지난 겨울 따뜻한 날씨에 패딩 등 겨울 의류가 팔리지 않아 패션업체들의 체력이 약해졌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신성통상 외에도 미국의 대형마트 타겟·월마트에 상품을 납품하는 패션 중견기업 신원도 수출부문 사업부 중 1개 팀을 축소하며 7명을 정리 해고했다. ODM 업체인 한세실업의 경우 인력을 감축하지 않았지만 신입사원 공채 일정을 중단하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교복 업체인 형지엘리트도 40명의 직원 가운데 5명을 정리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이번 패션업계 구조조정은 신호탄에 불과하다고 평가한다. 해외사업을 진행하는 패션업체들의 주요 바이어들은 유럽·미국에 집중돼 있는데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더 걸릴 것이란 이유에서다.
◇‘득보다 실’…위험 부담 탓에 ‘고용지원금’ 신청 안해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것도 구조조정의 한 이유로 꼽힌다. 패션기업 역시 코로나19 타격이 불가피한 업종임에도 여행업·공연업·관광운송업·관광숙박업·해상여객운송업 등 관광업종과 달리 패션업은 ‘특별고용지원 업종’에서 제외됐다.
정부에서 전 업종을 대상으로 ‘고용유지지원금’ 신청 접수를 받았지만 이는 패션 산업 특성상 적합하지 않은 지원책이라고 패션계는 입을 모았다.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면 코로나19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신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신규 인력 채용이 어렵다.
실제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으려면 Δ고용유지 실시 전월 매출이 15%이상 감소 Δ신규 근로자 채용 불가 Δ고용유지 실시 기간과 추가 1개월 간 전체 근로자의 회사사정으로 인한 권고사직 불가 등의 조건을 따라야한다. 또 이 기간 중 신규 채용이 발생하면 지원금 지급도 제한될 수 있다.
OEM 사업을 전개 중인 패션회사 근무 중인 A씨는 “제조업 등 장기간을 내다보고 사업을 전개하는 타 업종과 달리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해 급변하는 것이 패션업계”라며 “단기적으로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신규채용을 제한해 버리면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을 돌파할 새로운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결국 트렌드에 빠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조직을 유연하게 가져가야 하는데 지원금을 받게 되면 유연한 대처가 불가능하게 된다. ‘득보다 실’이 많아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기업 매출액이나 종업원 규모나 지원금액 신청 조건을 보면 회사에 필요한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찾기 어렵다”며 “장기적으로 지원금을 받았을 때 발생하는 위험부담도 크고, 향후 시장에 발목이 잡힐 수 있어 지원금을 받는 대신 자체적인 인력 감축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만약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는다 하더라도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당장 오더가 없는데, 그에 비해 지원금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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