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서 고액 자산가들을 상대하는 한 프라이빗뱅커(PB)는 최근 부동산 투자 등에 쓰려던 자금을 주식 쪽으로 돌려달라는 자산가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이 PB는 “부동산에 대한 문의는 눈에 띄게 줄었다”며 “현금을 맡겨 두고 1,700, 1,500 등 코스피 시나리오별로 분할 매수를 의뢰한 투자자가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투자자금이 부동산에서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는 ‘머니무브’ 현상이 관측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코로나19 충격과 정부의 강력한 집값 잡기 정책으로 위축되면서 최근 회복세를 보이는 주식시장으로 일부 넘어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여당의 총선 압승으로 부동산 규제 완화 기대감까지 꺾이면서 이 같은 흐름이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코로나19, 규제 강화에 얼어붙은 부동산
국내 가계의 최대 투자 대상인 부동산 시장은 올해 들어 계속 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4월 13일 기준 서울 아파트 가격은 0.05% 하락해 3주 연속 내렸다. 강남4구(강남, 서초, 송파, 강동구)는 0.2% 하락하며 올해 1월 27일 이후 12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특히 3월 30일 ―0.12%, 4월 6일 ―0.18% 등 하락폭이 점점 커지는 추세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가격이 급락했던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에서 급매물이 나오며 부동산 가격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지난해 12월 전용 76.79m²(7층)가 21억5000만 원까지 거래됐지만 지난달 같은 평형 1층이 19억5000만 원에 거래됐다. 최근에는 저층 중심으로 17억 원대까지 호가가 떨어진 상태다.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의 경우에도 전용 82.61m²가 지난해 12월 24억 원까지 거래됐지만 최근에는 21억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호가도 20억 원 초반까지 떨어졌다.
강남구의 한 공인중개업소 대표는 “요즘 강남권 자산가들은 더 이상 아파트를 투자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며 “부동산 투자를 하더라도 꼬마빌딩 같은 수익형 부동산에 주목하는 편”이라고 전했다. ○ ‘141조 원’ 사상 최대 자금 주식투자 대기
반면 코로나19 사태로 폭락한 뒤 최근 회복세를 보이는 한국 증시에는 향후 진입을 위한 ‘증시 주변 자금’이 몰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달 16일 기준 투자자예탁금, 파생상품거래예수금 등이 포함된 증시 주변 자금은 총 141조7281억 원으로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나온 1월 20일(115조975억)보다 23% 늘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투자자가 주식을 사려고 증권사에 맡겨놨거나 주식을 판 뒤 찾지 않은 투자자예탁금도 28조1620억 원에서 44조2345억 원으로 60% 가까이 증가했다.
서울 강남권의 한 PB는 “부동산 대신 주가연계증권(ELS) 등 비교적 안정적이고 익숙한 상품에 일부 투자하면서 증시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투자자도 많다”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당분간 개인 투자자의 증시 유입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대규모 양적완화와 저금리 정책으로 시중 유동성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는 반면, 예적금 및 부동산 시장은 저금리와 정부의 강력한 집값 안정화 정책으로 투자매력이 떨어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증시 주변으로 놀랄 만한 규모의 자금이 몰리고 있다”며 “부동산 등 다른 투자처의 상대적 매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박스권 장세가 깨진 점이 투자심리를 자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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