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남동공단 “IMF·금융위기때도 했는데…26년만에 야근 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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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4월 22일 14시 56분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의 한 자동차 정비 공장 © 뉴스1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의 한 자동차 정비 공장 © 뉴스1
#1. 26년 사업하면서 처음으로 야근을 접습니다. IMF, 2008년 금융위기 때도 공장을 돌렸는데, 회사 존립 문제까지 고민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차 자동차벤더 운영하는 A씨)

#2. 이번 황금연휴는 황금이 아닌, 최악의 연휴가 될 것 같습니다. (자동차 부품생산기업 연구소장 B씨)

지난 21일 찾은 수도권 최대 공단인 인천 남동구 남동공단은 금방 비가 내릴 것 같은 날씨랑 닮아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말 그대로 울기 직전이었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버텼던 남동공단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흔들리고 있다. 남동공단 곳곳에는 ‘임대’를 알리는 플래카드가 바람에 거친 소리를 내며 펄럭이고 있었다.

플래카드가 거친 소리를 내며 휘날리는 골목에는 코로나19 이후 일감이 끊겨 아예 공장 문을 걸어 닫는 곳들도 눈에 들어왔다. 우렁찬 기계음 대신 차가운 바람소리만 가득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중단 여파가 중소 자동차 부품사와 남동공단 지역 전체로 번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완성차 업계 생산 중단→1차벤더 생산 중단→2·3차벤더 생산 중단→정비,공구 등 후방산업 매출 급감’라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한목소리로 올 ‘2분기’가 고비가 될 것 이라며, 3분기까지 넘어갈 경우 심각한 상황에 닥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代)를 이어 2차 자동차 벤더사를 경영하는 C씨는 “IMF외환위기보다 훨씬 더 힘들다”며 “솔직히 국내 자동차 업계는 수출로 먹고살고, IMF 당시에는 수출이 계속 유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올해 황금연휴는 황금이 아닌, 최악의 연휴가 될 것 같다”며 “이미 이번달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70~80% 감소했고, 이번 2분기는 최악의 분기가 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또 “3분기 전까지 위기가 극복되지 않으면 회사의 존립 문제까지 고민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근 또 다른 자동차 부품사 역시 ‘2분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노비즈기업 인증을 받을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자동차 볼트 생산 업체 관계자 D씨는 “2분기는 최악이다. 문제는 5~6월에는 더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울먹였다.

이어 “금융위기 때 회사 창립 후 처음으로 회사 차원에서 휴업을 선언했다”며 “현재 다음 달에는 전사적으로 휴업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회사 경영진들은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남동공단에서 공장 임대·매매를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부동산 업자 F씨는 “2차·3차 벤더 공장은 공장 부지를 임대해서 운영하는 곳이 많다”며 “최근 공장 임대료를 못내서 계속 보증금 까먹는 업체가 늘고 있다”고 걱정했다.

자동차 부품 공장 옆에서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하루 100여명은 밥 먹었는데, 지금은 50명도 안 먹는 것 같다”며 “공장이 문 닫고, 야근을 안하니까 먹는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실제 자동차 업계의 위기는 남동공단만의 문제가 아닌, 자동차 업계 전체의 문제인 상황이다. 관세청 수출현황에 따르면, 올 4월(1~20일) 자동차 수출은 사실상 ‘수출절벽’에 가까운 상황이다. 승용차는 28.5%, 자동차 부품은 49.8% 급감했다. 승용차와 자동차 부품은 우리나라 수출 10%가량을 차지하는 품목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 기준으로 승용차는 7.0%, 자동차 부품은 4.2%를 차지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이대로라면 이미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과 여행업을 비롯해 자동차 등 제조업 분야 대기업 중에서도 줄도산이 속출하는 건 시간문제”라고 우려했다.

이같은 자동차 생산라인의 중단은 후방 산업 및 지역 상권에서 바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자동차 정비 업계 역시 자동차 생산라인만큼 찬바람이 불고 있었다.

배종국 인천자동차정비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우리도 생산라인처럼 2분기를 고비로 보고 있다”며 6~7월 넘어가면 도산하는 정비업체들이 나타날 것이다. 현재 조합에 가입된 인천 정비업체 250개 가운데 30~40%가 도산위기에 처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30여년 가까이 정비업계에서 종사하면서 IMF, 금융위기도 잘 견뎠는데 이번엔 조금 상황이 다른 것 같다“며 ”조합에 속한 정비업체들 중에 직원들에게 월급 못 주고 임대료 못 주는 업체들이 늘고 있어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동공단 상가 밀집 지역인 수인선 남동인더스파크 1번 출구 앞 남동공단산업용품상가 역시 적막감이 감돌았다.

30여 년 동안 남동공단 업체들에 페인트를 납품한 G씨는 ”원래 이곳은 상가 곳곳마다 구매한 물건을 싣겠다고 주차 전쟁을 벌어지는 곳“이라며 ”하지만 지금 보시다시피 썰렁하다“고 말했다. 실제 남동공단산업용품상가 앞에는 물건을 싣는 차량을 찾기 힘들었다.

이어 ”자동차 납품공정의 마지막 단계인 페인트 공정은 보통 3월부터 활력이 돌기 시작한다“며 ”그런데 지금은 아예 수요 절벽이다. IMF 때보다 더 힘든 상황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바로 옆 전동공구상 H씨 역시 ”코로나19 이후 전동공구 매출이 1/3가량 줄었다“며 ”현장이 잘 안 돌아가니까 전동 공구 역시 구매를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가 단지에 있는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남동공단 입주 기업들의 기업대출 문의가 늘었다“며 현재 빨간불이 켜진 공단의 분위기를 전했다.

(인천=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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