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자금 운영을 맡은 KDB산업은행이 항공 등 주요산업 명운을 결정짓는 막중한 책임을 떠안게 됐다.
산은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부실기업들을 살리는 재활병동 또는 구조조정을 지휘하는 칼잡이 역할을 도맡아왔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실물경기 위기 상황은 이전을 능가한다.
코로나19로 한계에 몰린 기업들의 SOS(긴급구호요청)가 잇따르는 상황에서 어떤 기업을 어떤 방식으로 살릴 지는 산은의 결정에 달렸다. 막대한 자원이 투입되는 만큼 자금 운용의 투명성과 공정성 등의 책임문제도 대두될 전망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의 원칙과도 같은 ‘회사의 자구노력’도 금융지원을 위한 변수다.
정부는 22일 ‘일자리 위기극복을 위한 고용 및 기업 안정 대책’을 내놓고 산업은행에 40조원 규모의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설치해 항공, 해운, 조선, 자동차, 일반기계, 전력, 통신 등 7대 기간산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우선 국가보증 기금채권을 발행해 40조원을 조달한다.
기업 지원은 대출, 지급보증, 주식연계증권(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 또는 우선주(상환전환우선주) 매입, 특수목적법인(SPV)·펀드 출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부는 기간산업안정자금 조성을 위해 산은법 등 국회의 법률개정과 기금채권에 대한 국가보증에 나설 정도로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128조원에 육박하는 대출 잔액이 부담스러운 산은은 그간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아왔지만 정부의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이를 해소할 수 있게 됐다.
산은이 가장 먼저 지원하게 될 기업은 코로나19로 국가간 이동이 제약되면서 심각한 경영난에 처한 항공업이다. 40조원 지원 방안이 발표되기 이전부터 항공업종은 꾸준히 산은을 향해 SOS를 쳤고, 이미 아시아나항공에 1조7000억원, 주요 LCC(저비용항공사)에 1260억원 등이 지원됐다. 그러나 항공업계선 지원의 우선순위나 자금규모를 두고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향후 다른 산업군에 대한 지원과정에서도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해야 불필요한 잡음을 최소화할 수 있다.
향후 산은은 이들 기업에 대한 추가지원은 물론 업계 맏형 대한항공에도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매출의 94%를 차지하는 국제노선 대부분이 ‘개점휴업’ 상태에 접어든 대한항공은 4월이 지나면 현금이 바닥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조선, 일반기계 등 국내 고용에서 역할이 큰 대기업들에 대한 지원 방안도 서둘러야 한다. 특히 자동차업종은 한 지역 경기를 좌지우지 하는 핵심산업으로 꼽힌다. 정부가 고용안정을 가장 강조한 만큼 자동차업종은 최대한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다만 쌍용차가 문제다. 최근 쌍용차의 대주주인 마힌드라그룹은 돌연 쌍용차에 대한 2300억원 규모의 신규 투자 계획을 철회했다. 이미 부분 자본 잠식 상태에 빠져 있는 쌍용차는 자금 수혈이 시급하다. 산은이 가진 쌍용차 채권은 1900억원 정도다. 쌍용차는 오는 7월 이중 900억원을 상환해야 한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대주주의 자구노력이 전제돼야 금융지원도 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쌍용차 지원여부에 고민이 깊다. 고용효과가 큰 자동차산업을 지키되 대주주의 ‘먹튀’ 등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면서 금융지원을 해야 하는 두 가지 숙제를 가진 셈이다.
특히 정부는 코로나 사태와 상관없는 부실한 기업에 대해선 구조조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특정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결정하기 앞서 해당 기업의 경영난이 코로나로 인한 것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도 산은의 주요 역할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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