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양 물류 산업의 안전을 위한 넘버 원 인공지능(AI) 플랫폼’. 선박의 자율운항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씨드로닉스’가 지향하는 목표다. 얼핏 듣기에도 거창하다. 국내에서 이루겠다는 것도 아니다. 전 세계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포부다. 기술력과 미래의 시장 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꿈이다.
2일 만난 박별터 씨드로닉스 대표(34)는 독특한 이름만큼 차별화된 스타트업을 키워 가고 있다. 씨드로닉스는 드넓은 바다에서 무인선박이 안전하게 운항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자동차의 자율운행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어 익숙하지만 선박의 자율운항은 아직 낯선 영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해당 분야의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은 국내외에서 씨드로닉스가 유일하다. 씨드로닉스가 세계 최초, 최고를 목표로 하는 것이 허황되지 않은 이유다.
박 대표는 KAIST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2015년 말, 연구실 동기 3명과 함께 창업에 나섰다. 자동차나 드론 등에 적용되는 자율주행 시스템의 알고리즘을 연구하던 때였다. 그저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사회에 필요한 기술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그를 창업으로 이끌었다. 자동차, 배달로봇 등 자율운행 시스템이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분야 중에 박 대표가 선택한 것은 선박이었다. 박 대표는 “선박 사고 대부분이 사람의 부주의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자율운항기술 개발이 필요한 분야였지만 사실상 황무지에 가까웠다”며 “우리가 뛰어든다면 그런 사고를 줄이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야심 차게 시작한 사업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생각보다 선박 자율운항에 필요한 기술 수준이 높았고 투자자를 설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대형 선박을 무인화하기 위해서는 운항뿐만 아니라 엔진과 화물 관리까지 모두 자율화해야 했다. 불과 4명이 속한 스타트업이 당장 이루기에는 벅찬 목표였다. 투자자의 반응도 회의적이었다. 선박 자율운항의 개념 자체가 부족했던 시기였고 기술 개발의 필요성에 동의하는 투자자도 사업화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의구심을 품었다. 결국 박 대표는 2018년 6월 사업 모델을 수정했다. 완전 무인화 선박 개발은 최종 지향점으로 삼고 선박 운항을 보조하는 시스템을 순차적으로 개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선박 접안보조 시스템인 ‘선박어라운드뷰’다. 배가 부두에 정박하는 접안 과정 때 카메라를 활용한 인지 시스템이 선박과 부두 간의 거리와 선박의 속도, 풍속 등의 상세한 정보를 도선사에게 실시간으로 전해주는 기술이다. 흔히 접하는 자동차의 주차보조 시스템이나 차선 이탈 방지 기능과 유사하다. 현재 울산본항에 총 4개가 설치돼 도선사의 접안을 돕고 있다. 박 대표는 “우리 시스템의 목적은 도선사의 업무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접안의 부담감과 위험성을 줄이는 것”이라며 “스타트업이 흔히 겪는 전통산업과의 충돌이 아닌 협업이 발생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올해 목표는 국내 4대 항만(울산 부산 여수광양 인천) 모두에 선박 접안보조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다. 북유럽과 싱가포르 등 해외 항만으로의 수출도 꾀하고 있다.
씨드로닉스는 선박어라운드뷰 시스템을 바탕으로 지난해 하반기(7∼12월) 초기 투자에 해당하는 ‘시리즈A’ 유치에 성공했다. 올 1월에는 해양수산부로부터 해양수산 신기술 인증도 받았다.
박 대표는 여전히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걷고 있다. 창업 후 4년 동안 경쟁 업체는 물론이고 후발주자조차 등장하지 않았다. 그의 최종 목표 또한 변하지 않았다. 그의 꿈처럼 완전한 자율운항 선박이 개발되면 사람이 탑승하지 않기 때문에 안전사고를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박 대표는 “정부에서도 필요성을 알고 사업 기술 개발을 도와주고 있다”며 “머지않은 미래에 상용화는 아니더라도 자율운항 선박의 시범 버전은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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