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 대신 깜빡이, 의견은 쌍라이트로… 사상 첫 드라이브 스루 재건축 총회

  • 뉴스1
  • 입력 2020년 4월 28일 14시 46분


28일 서울 개포주공1단지 내 공터에서 열린 재건축 조합의 ‘드라이브 스루’ 관리처분 총회에서 차량 이용이 불가능한 조합원들이 폐교 운동장에 거리를 두며 의자에 앉아 총회 안건을 듣고 있다. © News1
28일 서울 개포주공1단지 내 공터에서 열린 재건축 조합의 ‘드라이브 스루’ 관리처분 총회에서 차량 이용이 불가능한 조합원들이 폐교 운동장에 거리를 두며 의자에 앉아 총회 안건을 듣고 있다. © News1
“박수를 대신해서 그 마음을 담아 방향지시등을 켜주시기 바랍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전조등을 켜주시기 바랍니다”

사상 첫 ‘드라이브 스루’(승차) 방식으로 열린 28일 서울 개포주공1단지 재건축조합 총회에서는 여느 총회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펼쳐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분양가상한제까지 연기됐다. 그러나 하루하루 쌓여가는 지연 비용 부담 때문에 개포1재건축 조합은 이날 오전 승차 총회를 강행했다.

조합원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지지한다’면서도 총회의 진행과 운영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일부에서는 조합원들이 총회 운영에 항의해 진행 요원들과 말싸움으로 언성을 높이는 모습도 포착됐다.

총회는 계획한 오전 11시보다 20분 정도 늦게 시작했다. 개인 차를 타고 참석하는 승차 총회인 만큼 일대로 차량이 몰리면서 교통혼잡으로 조합원들이 제시간에 모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근 매봉터널부터 총회장인 개포주공1단지까지 총회에 참석하려는 차들로 통행이 원활하지 못했다. 20년째 택시를 운행한다는 택시기사 A씨는 “평일 이 시간대에 이렇게 막혀보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1단지 주변에 도착하더라도 입장을 위해 대기하는 차량 행렬은 구룡터널 인근에서부터 개포우성3차 아파트까지 1단지를 우측에 끼고 둘러졌다. 도보로 참석한 조합원들은 인근 개포고등학교에서부터 줄을 섰다.

조합 측이 방역을 이유로 단 1개의 입구와 출구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출입 인원과 차량 탑승자의 온도를 체크하고, 조합원 유무를 확인하는 과정 때문에 출입 행렬은 단지를 끼고 길게 늘어섰다.

총회 진행 중에도 진풍경은 이어졌다. 진행자는 이 지역 현역인 전현희 의원 등에게 공로패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단상 앞에 주차된 차들을 향해 “박수 대신 방향지시등으로 환영해달라”고 했고, 주차된 수백 대의 차량은 이른바 ‘쌍깜박이’로 화답했다.

진행자는 안건에 대한 의견을 수렴할 때도 ‘발언권 요청을 전조등을 켜서 해달라’거나 ‘전조등을 미처 파악하지 못하면 클랙슨을 울려달라’고 했다.

총회장이 된 공터에는 사륜 바이크도 등장했다. 차량 수백 대가 동시에 주차돼 총회를 지켜볼 만큼 넓은 부지를 한정된 진행요원들이 도보로 챙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진행요원 B씨는 “30~40대 사륜 바이크를 대여해서 배치했다”고 설명했다.

참석한 차량은 노란색과 빨간색 스티커로 구분됐다. 노란색 스티커를 부착한 차량은 단순 총회 참석 목적, 빨간색 스티커 부착 차량은 현장에서 총회를 보며 투표한 차량이다.

정장을 차려입은 진행요원들이 사륜 바이크 뒷좌석에 기표가 된 표를 수령하기 위한 투표함이나 조합원에게 제공할 물병과 떡 등 요깃거리를 실은 채 흙먼지를 일으키며 차량 사이를 오가는 모습도 총회 내내 목격됐다.

도보 참석 조합원은 1단지 한가운데 위치한 개원초등학교 공터에 마련된 일정 거리를 띄운 좌석에 앉아서 총회를 시청했다. 이날 총회에는 낮 12시30분을 기준으로 접수자 수가 2200명을 넘겼다.

일부에서는 진행요원과 조합원 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번호표 배부가 아닌, 진행요원들이 일일이 차량을 찾아다니며 접수를 하고, 기표를 수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일부 조합원들은 주차 이후 40분이 넘도록 차 안에서 기다리기만 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다.

총회 시간 중간에 입장한 조합원이 이미 투표를 마치고 빠져나간 차량의 자리를 대체해 순서가 꼬이고, 투표를 마친 차량과 하지 않은 차량의 식별이 힘들어지면서 생긴 해프닝이다.

한편 총회를 지켜본 조합원들은 대체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총회 개최를 지지했다.

도보로 총회에 참석했던 70대 여성 조합원 C씨는 “총회를 이런 식으로라도 열고 재건축 일을 진행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만 불만사항도 제기됐다. ‘이런 식의 총회가 대의성을 띌 수 있느냐’는 비판도 나왔던 것. 40대 남성 조합원 D씨는 “조합원 의견을 제대로 청취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고, 출석 체크만 겨우 하는 정도로 대의가 제대로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촌평을 남겼다.

접수 과정에서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조합원도 있었다. 조합원 E씨는 “줄을 서서 접수하는 과정에 접수자들은 방역복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춰 입고 우리는 다닥다닥 붙어서 접수했다”며 “자기들(진행요원)만 안 걸리면 된다는 총회지 이게 무슨 방역에 철저한 총회냐”고 혀를 찼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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