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석유기업, 1분기 순이익 전년比 70억 달러↓…‘탈석유’ 전략 본격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5월 5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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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에너지 시장을 움직이는 5대 석유 기업의 올해 1분기(1~3월) 합산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0억 달러(약 8조6100억 원)가 줄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석유 소비 수요가 줄고 국제 유가가 폭락하자 초대형 석유 기업도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주요 석유 기업이 위기 극복 방안으로 연간 투자·배당액 축소와 사업 다각화를 제시한 만큼 사상 최악의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국내 정유 4사도 이에 맞춰 ‘탈석유’ 전략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5일 글로벌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엑슨모빌, 셰브론, BP, 로열더치셸, 토탈 등 5대 석유 기업의 올해 1분기 합산 순이익은 85억 달러로 155억 달러 대비 45.2% 하락했다.

미국 최대 석유 기업 엑슨모빌은 1999년 엑슨과 모빌의 합병 후 21년만에 처음으로 분기 단위 순손실(6억1000만 달러)을 냈다. 영국 BP는 1분기 순이익이 8억 달러로 전년 동기(24억 달러) 대비 3분의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영국과 네덜란드 자본의 합작사 로열더치셸은 순이익이 29억 달러로 같은 기간 45.2% 감소했다. 프랑스 토탈의 순이익도 18억 달러로 10억 달러 줄었다. 주요 석유 기업 중 미국 셰브론만 순이익이 증가세를 보였으나 해외 자산 매각과 환율 변동에 따른 차익 등 1회성 효과에 힘입은 것이다.

원유 탐사부터 개발, 수송, 정제, 판매까지 폭넓게 사업을 하는 5대 석유 기업은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막대한 영향력 때문에 ‘석유 메이저’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산유국의 증산 경쟁으로 원유 가격이 한때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진 데다 정제한 항공유, 휘발유 수요도 감소하면서 순이익이 대폭 감소하거나 적자를 낸 것이다.

석유 메이저는 올해 2분기(4~6월) 실적이 더 암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 기업의 주요 활동 시장인 미국과 유럽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활동 제한 조치가 3월 중하순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고 현재까지도 이동 통제 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크 워스(Mike Wirth) 셰브론 최고경영자(CEO)는 1일(현지시간) “석유 수요가 갈수록 바닥을 향해 움직이는 느낌”이라며 “올해 2분기는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석유 메이저는 코로나19가 진정세에 접어들어도 국제 유가가 극적으로 반등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로열더치셸은 국제 유가가 2021년 1분기에 배럴당 40달러 선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석유 제품의 수요가 공급보다 맞아지는 시기도 이르면 올해 4분기(10~12월)일 것으로 예측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올해 석유 메이저의 연간 순이익 급락이나 적자 전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석유 메이저는 우선 지출부터 줄여 현금을 최대한 확보해 위기에 대응한 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 재편 전략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로열더치셸은 1945년 2차 세계대전 이후 사상 처음으로 올해 주주 배당금을 줄이기로 했다. 셰브론은 연간 예정 투자액을 200억 달러에서 140억 달러로 감축했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통 석유 산업이 전쟁이나 산유국 간 갈등이나 전기자동차·신재생에너지의 등장이 아니라 질병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 충격적”이라며 “석유 메이저는 앞으로 사업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천연가스, 화학 등 새로운 사업 비중을 빠르게 높이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석유 메이저보다 훨씬 규모가 작고 일부 사업 분야(정제·판매)에서만 사업을 하는 국내 정유 4사도 생존을 위해 비슷한 대응 전략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정유업계는 코로나19 영향으로 4사의 1분기 영업손실이 4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정유 4사가 올해는 투자 축소와 비용 절감 등으로 현금을 최대한 아껴야 하는 상황이지만 2021년부터는 ‘탈석유’라는 확실한 목표를 갖고 배터리, 화학 등의 신사업 비중을 높일 수 있는 명확한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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