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50대 전모 씨는 최근 친척이 운영하는 학원에서 셔틀버스를 운전하면서, 짬을 내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년 전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했지만, 국민연금을 받으려면 아직 8년 가까이 남아 있는 상황이라 마음이 조급하다.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회사에 다니던 때 일상이던 비용들도 하나하나 부담이 됐다. 여가활동까지 줄이다 보니 괜히 울적해지는 날도 많다.
하나금융그룹은 11일 ‘100년 행복연구센터’ 개소를 기념해 ‘대한민국 퇴직자들이 사는 법’ 보고서를 발간했다. 수도권과 광역시 거주 50세 이상 남녀 퇴직자 1000명을 설문해 만들었다. 응답자들이 밝힌 퇴직 이후 생활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 퇴직 후 소득 공백 평균 12.5년
보고서에 따르면 50세 이상 퇴직자들이 국민연금 수령 때까지 버텨야 하는 소득 공백 기간은 약 12.5년. 이 기간 퇴직자 3명 중 2명가량은 생활비를 29%가량 줄이거나, 재취업에 나서고 있다.
응답자의 38.1%는 50∼54세에 퇴직했고, 45∼49세 은퇴자도 23.2%나 됐다. 이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생활비는 월 400만∼500만 원이었지만, 실제 지출하는 평균 생활비는 약 251만7000원으로 이에 크게 못 미쳤다. 써야 할 돈을 못 쓰고 사는 것이다. 응답자들은 “한 달 생활비 200만∼300만 원이면 남한테 아쉬운 소리 안 하며 먹고살 수는 있지만, 경조사를 챙기고 여가를 즐기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의견이었다.
이 때문에 퇴직자 절반(55.1%)은 재취업이나 창업을 했다. 배우자도 절반 이상(58.6%)이 일을 한다. 수입은 월평균 393만7000원. 퇴직자 36.4%는 일을 그만두면 늦어도 1년 안에 형평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를 안고 산다.
서울 강동구에 거주하는 60대 퇴직자 강모 씨가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월 130만 원 남짓의 국민연금으로는 생활이 안 된다. 아직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지만, 60대이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는 상가 야간경비 정도다. 그의 아내는 그보다 먼저 동네 아파트 아이들 ‘등·하원 돌보미’로 용돈 벌이에 나섰다.
퇴직자의 65%는 퇴직 후 심적 후유증을 경험했다.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서의 압박감(44.8%), 사회적 지위 상실(42.7%) 때문이었다. ○ 노후자금 충분한 ‘금(金)퇴족’의 비결
노후자금이 충분하다고 밝힌 퇴직자는 8.2%. 보고서는 이들을 ‘금퇴족’으로 분류했다. 이들은 퇴직자 평균 월 생활비보다 22% 많은 307만9000원을 생활비로 지출한다.
금퇴족들은 노후 준비의 비결로 ‘경제활동 재개’보다 ‘금융자산 마련’을 꼽았다. 특히 퇴직연금과 연금저축 등 연금에 일찍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퇴족의 28%는 이미 30대 초반에 연금에 가입했고, 40대부터 가입한 비율도 46%로 퇴직자 평균(각각 20.4%, 32%)보다 일렀다.
투자금융 자산도 적극 활용했다. 금퇴족의 절반가량(47%)은 30대 후반부터 투자금융 상품에 돈을 넣었다. 금융회사의 자산관리 설명회, 책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후자금 운용 관련 정보를 모았고, 이른 내 집 마련을 통해 주거 안정성과 비상 노후 재원을 확보한 경우가 많았다. 또 거주용 주택 외에 다른 부동산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급이나 사업소득 외에 금융자산 및 임대 소득 등으로 소득원을 다양화해 노후 안정성을 높인 것이다.
조용준 100년 행복연구센터장은 “퇴직 이후에 자녀 결혼, 부동산 활용, 간병·상속 대비 등 여러 이슈에 차례로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퇴직 이후를 고려한 전문적인 자산 관리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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