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 화웨이의 반도체 공급망에 대해 ‘정밀타격’에 나서자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사실상 미국의 요청에 호응하면서 파운드리 시장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각각 압박을 받게 됐다.
19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로 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한국, 일본 등 각국 전자 부품기업에 부정적 영향 끼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인 화웨이가 스마트폰, 5G 이동통신장비 생산에 차질을 빚을 경우 이들을 주요 고객사로 둔 반도체 및 관련 부품기업 모두 전례 없는 경영 불확실성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
● “중국 ‘반도체 굴기’ 꿈, 미국 기술 없이는 불가능”
당장 코너에 몰린 쪽은 화웨이다. 미 상무부는 올해 9월부터 전 세계 반도체 생산기업 중 미국의 장비 및 소프트웨어를 일부라도 사용했다면, 화웨이가 설계한 반도체를 위탁생산할 때 별도의 승인을 거치도록 했다. 현재 세계 반도체 생산기업 중 미국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주요 기업은 거의 없다.
메모리 반도체같은 완제품은 화웨이에 팔 수 있지만 화웨이가 의뢰한 시스템반도체 위탁생산은 어렵게 만든 것이다. 샤오미 오포 비보처럼 반도체를 사서 핸드폰을 조립해서 파는 것은 괜찮지만 화웨이가 직접 반도체 기술을 키우는 것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사실상 화웨이의 시스템반도체를 위탁생산하고 있는 TSMC를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됐다.
화웨이는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을 통해 반도체를 독자 개발해왔지만 생산은 TSMC에 맡겨왔다. TSMC는 미국 제재 발표 직전에 과거 모토로라 반도체 생산 중심지였던 미국 애리조나주에 120억 달러(14조7000억 원)를 투자해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일부 외신은 TSMC가 아예 화웨이 신규 주문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TSMC는 화웨이 신규주문 거부 보도를 부인했지만 사실상 화웨이를 버리고 미국 올인 전략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말했다.
TSMC마저 돌아서면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뒤 화웨이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투자를 벌이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미국 없는 기술 개발이라는, 아주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 삼성전자·SK하이닉스도 분주
미국 제재는 시스템반도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SK하이닉스, 삼성전자가 생산하는 메모리반도체는 영향권 밖이다.
하지만 2030년까지 TSMC를 제치고 시스템반도체 1위에 올라서겠다고 발표한 삼성의 속내는 복잡하다. 미국은 삼성전자에게도 미국 내 공장 증설과 화웨이 제재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화웨이가 파운드리 주요 고객은 아니지만 잠재 고객을 잃게 될 상황인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올인 전략을 시작한 TSMC와 경쟁하려면 삼성전자도 미국 내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 팹리스 주요 고객과 더 밀접한 관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가 14나노미터(nm) 공정에 머무르고 있는 미국 오스틴 팹을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사용하는 최신 공장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등 대대적인 투자를 발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화웨이가 경영악화에 빠질 경우 SK하이닉스 매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화웨이 측에 5조 원 안팎의 메모리반도체를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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