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브랜드 닛산과 인피니티가 올해 12월을 마지막으로 한국 시장에서 철수한다. 지난 2004년 한국닛산 출범 16년만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일본차 불매운동부터 이어진 판매 부진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다.
닛산을 비롯, 토요타·혼다 등 기존 일본차 브랜드 역시 지난해부터 이어진 판매부진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닛산의 철수가 남은 일본차 브랜드들에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29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한국닛산은 닛산과 인피티니 브랜드의 국내 판매를 올해 12월 중단한다. 다만, 기존 고객을 위한 차량 품질보증, 부품관리 등 애프터서비스(A/S)는 2028년까지 제공하기로 했다. 한국닛산측은 “대내외적인 사업환경 변화로 한국 시장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서 한국 시장에서 다시 지속가능한 성장구조를 갖추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사실상 닛산의 한국시장 철수는 예견된 일이었다. 이미 지난해 9월에도 외신 등을 통해 한국 시장 철수설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한국닛산측은 “한국을 떠나지 않는다”며 이를 공식 부인했지만 업계에선 철수를 예상된 수순으로 여겨 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일본차 불매운동이 확산되면서 월간 판매량은 닛산과 인피니티가 각각 46대(2019년 9월), 1대(2020년 1월)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올해 들어서도 닛산과 인피니티는 각각 1~4월 누적판매량이 813대, 159대에 그쳐 합산 판매량 전년 동기 대비 54.6%나 급감했다.
닛산이 철수를 공식화함에 따라 국내 남은 일본차 브랜드들 역시 위기감이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차 5개 브랜드의 올 1~4월 누적 판매량은 총 5636대로 전년 동기(1만5121대)에 비해 62.7% 감소했다. 수입차 시장 전체 판매량이 같은기간 10.3% 증가한 것을 고려하면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차 브랜드들은 지난해 7월 일본 불매운동이 본격화된 이후 1년 가까이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1103대로 저점을 찍은 이후 4분기 연말 할인공세에 힘입어 12월(3670대) 판매 반등을 이루기도 했지만 올해 들어서는 다시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스바루, 미쓰비시 등 일본차 브랜드들도 한국 진출을 선언했다가 2~3년만에 한국시장을 떠난 바 있다. 닛산은 무려 16년간 한국 시장에서 영업을 지속해온 만큼 소비자들의 충격도 클 전망이다. 이 역시 남아 있는 일본차 브랜드들에게는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입차 업계 한 관계자는 “서비스망은 남는다고 하지만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불안감을 조성할 수 있다”며 “과거에도 일본차 브랜드들의 진출과 철수가 반복됐던 만큼 장기적으로 볼 때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일본차들의 회복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매운동 초기에는 반일감정에 따른 소비자들의 외면이 주된 영향을 미쳤지만, 이후 판매 부진이 장기화된 데에는 일본차들의 한국 내 영업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최근 일본차들의 신차 부재는 심각한 상황이다. 일본차 판매 1위 토요타코리아의 경우, 올 들어 토요타는 신형 프리우스 2개 모델, 스포츠카 모델 GR수프라, 한정판 캠리 XSE를 내놨지만, 신형 프리우스를 제외하면 모두 대중적인 모델은 아니다. 렉서스의 경우 지난 2월 부분변경 출시한 RX를 제외하면 신차 부재가 길다. 혼다의 경우 주력 모델의 연식변경 모델만 내놨을 뿐 신차가 없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폭스바겐, BMW도 배출가스 조작, 화재 등 큰 이슈를 겪으면서 신차 출시와 마케팅, AS에 대한 후속대응을 지속적으로 해오며 판매를 회복했는데 일본차 브랜드들의 경우 판매가 되면 좋고 아니면 철수하는 식의 인식을 소비자들에게 주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분명 남아있는 일본차 브랜드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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