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도권 유턴 기업에 대한 지원과 대기업 지주회사의 벤처캐피털(CVC) 허용을 검토하기로 한 것은 결국 대기업의 투자가 경제 회복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수도권 규제와 금산분리 완화 등 그동안 여권 내에서 금기시돼 온 부분까지 건드린 것은 그만큼 현재 경제 상황에 대규모 기업 투자가 절실하다는 인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수도권 규제는 본류라고 할 수 있는 입지·환경 규제를 아직 건드리지 않았고,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노조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어 투자 환경을 본질적으로 개선하기엔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수도권 규제 손 못 댄 채 “유턴 기업 적극 유치”
정부는 1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유턴 기업 유치를 위한 종합 패키지 정책을 내놨다. 수도권 공장총량제 범위 내에서 유턴 기업을 우선 배정하고 산업단지에 입주할 때 분양·임대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또 지금까지는 지방으로 유턴한 기업에만 기업당 최대 100억 원의 보조금을 줬지만 앞으로는 이 보조금을 200억 원으로 확대하고, 수도권 유턴 기업에도 15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수도권과 지방 입주 기업에 대한 정책 차별을 어느 정도 해소한 것이다. 현재는 유턴 기업이 해외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줄여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앞으로는 생산 감축량에 비례해 법인세 등을 깎아주는 방안도 내놨다.
그러나 수도권 규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장 입지규제의 완화책은 담기지 않았다. 현재 시행 중인 공장총량제는 3년 단위로 일정 면적을 정하고 그 안에서만 연면적 500m² 이상 공장의 신·증설을 허용하고 있다. 사실상 수도권 내에서 기업들의 자유로운 투자 확대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전혀 건드리지 못했다.
반도체 자동차 등 대규모 고용을 일으키는 업종에서도 이번 대책의 실효성을 낮게 보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미국과 중국 등 세계 주요국이 한국 반도체 기업을 향해 현지 투자를 늘려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보조금 혜택만으로 생산 라인을 국내로 가져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자동차업계도 노사 갈등 및 고임금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노조 파업 등 근본적인 위험 부담을 안은 채 일부 혜택만 보자고 유턴하는 기업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다음 달 유턴 기업을 위한 추가 대책을 내놓을 방침이지만 지자체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질 경우 이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 관계자는 “수도권 입지 규제의 핵심은 결국 상수원 보호 등 환경 규제”라며 “유턴을 원하는 기업을 일대일로 지원하며 환경 규제를 완화해주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재계, 대기업의 벤처캐피털 보유 허용 환영
정부는 그간 금산분리 규정으로 막혀 있던 대기업 지주회사의 CVC 보유를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CVC는 대기업이 벤처에 투자한 뒤 모(母)기업의 인프라를 활용해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형태를 뜻한다. 공정거래법상 대기업 지주회사는 금융업으로 분류되는 CVC를 보유할 수 없는데 벤처 투자 활성화와 대기업의 신성장동력 마련을 위해 이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구글이나 인텔 등의 대기업이 CVC를 통해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지주사 체제가 아닌 삼성, 한화 등 대기업과 일부 금융회사가 CVC를 운영하고 있었지만 지주사 체제인 SK, LG 등 주요 기업들은 CVC 설립 자체가 불가능했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입장에서 CVC를 통한 투자는 섣부른 인수합병(M&A)이나 자체 기술 개발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공정거래위원회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부처 간 이견 조율은 필요한 상황이다. 대기업이 투자를 통해 여러 벤처기업의 지분을 가질 경우 사실상 계열사가 늘어나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기업의 투자 유보금이 벤처업계로 흘러들어간다는 순기능과 벤처기업의 다양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부작용이 공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결국 다시 꺼낸 SOC 투자
전국의 노후 도로를 다시 포장하고 부산항 제2신항 등 지역 항만 개발을 서두르는 대규모 인프라 투자 카드도 꺼내 들었다.
정부는 건설 투자 보완책으로 기존의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와 도시재생뉴딜 사업에 더해 노후 인프라 시설 개선을 확대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30년 이상 된 노후 도로의 포장을 다시 하고 현행 설계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도로를 개량하는 식이다. 노후 터널, 철도, 댐 등도 안전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개선한다.
부산항 제2신항, 새만금신항, 울산신항 등 42조 원 규모의 제2차 신항만 개발계획은 최대한 빨리 추진하기로 했다. 부산항 제2신항은 2022년 착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난해 1월 발표한 25조 원 규모의 국가 균형발전 프로젝트도 기본계획 수립 등 관련 절차를 앞당기기로 했다. 국가 균형발전 프로젝트 등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사업 가운데 일부를 민간투자 사업으로 전환하되 어떤 사업을 선정할지 다음 달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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