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가 터질 때마다 정치권은 질타를 쏟아내지만 정작 국회 역시 소비자 보호나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은 뒷전이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금융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금소법)은 발의된 지 8년여 만인 올해 3월 겨우 본회의를 통과했다. 소비자 편의와 금융시장 경쟁력 강화를 위한 각종 법안들 역시 국회에 발목을 잡히기 일쑤였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대책으로 18대 국회에 처음 발의된 금소법은 ‘비운의 법’으로 불렸다. 회기마다 법안이 제출됐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거나,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등 조직개편과 함께 논의되는 과정에서 번번이 폐기됐기 때문이다. 금소법 제정이 미뤄지는 사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 대형 소비자피해는 수차례 발생했다.
시장에서는 금소법이 진작 시행됐더라면 DLF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적어도 피해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탄식이 나온다. 금소법은 현재 일부 금융상품에 적용되고 있는 ‘적합성 원칙’ 등 판매 원칙을 모든 금융상품으로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비자의 재산 상황, 금융상품 취득·처분 경험 등에 비춰 부적합한 금융상품 권유를 금지하고 있다.
또 불확실한 상황에 대해 단정적 판단을 제공하거나, 소비자가 오인할 만한 우려가 있는 허위사실을 알려서도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후제재도 강화돼 판매규제 위반행위 시에는 관련 수입의 50%까지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게 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소법이 있었더라면 은행들이 소비자들에게 광고 문자를 대거 발송하고, ‘만기상환 확률 100%, 원금손실률 0%’ 등의 내용을 담은 자료를 사내게시판에 공유하면서까지 공격적으로 DLF 영업을 벌이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2017년 출범한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의 ‘개점휴업’ 장기화도 국회와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다. 대출 등 영업활동을 위해서는 증자가 필요한데 케이뱅크의 실질적 대주주인 KT가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 때문에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해 4월부터 직장인K신용대출 등 대출을 줄줄이 중단하고 사실상 영업을 포기해야 했다.
이에 국회 정무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 요건 완화를 핵심으로 하는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했지만 3월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이후 내용을 바꿔 4월 말에야 가까스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국회를 기다리다 지친 케이뱅크가 이미 KT의 자회사인 BC카드 주도의 증자라는 ‘플랜B’를 마련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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