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7일 이례적으로 호소문을 내고 “경험하지 못한 위기”라고 밝힌 이유는 최근 주력 사업인 반도체를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사업 불확실성뿐 아니라 지정학적 위기도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반도체 사업부문을 중심으로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 수립에 나선 상태다.
최근 미국과 중국이 기술 패권을 놓고 갈등이 격해지며 양측이 삼성에 각각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한일 갈등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라 수출 규제가 확대될 것에 대비해 시나리오별 대응 방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의 구속 우려도 삼성의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삼성은 이날 호소문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우리 경제는 한 치 앞을 전망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주역이 돼야 할 삼성이 오히려 경영 위기를 맞으면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부끄럽고 송구스럽다”고도 밝혔다.
○ 또 기로에 선 삼성
이 부회장이 8일 구속 기로에 놓이게 된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 관련 의혹을 검찰에 고발한 지 약 19개월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46)는 8일 오전 10시 30분경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서관 321호 법정에서 이 부회장, 옛 미래전략실 최지성 전 부회장(69), 김종중 전 사장(64) 등 3명에 대한 영장 심사를 진행한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시세조종 행위, 주식회사 등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이다.
검찰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적인 행위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 삼성은 이를 부인하며 외부에 해당 사안의 판단을 맡기고 싶다고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했지만 곧바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적극적인 반박으로 태세를 바꿨다. 삼성은 최근 세 차례 입장문을 통해 △삼성물산 및 제일모직 합병 성사 위한 주가 조종 △이 부회장에게 승계 작업 보고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처리 문제 등에 모두 “적법한 절차에 따라 처리했고, 이 부회장은 보고를 받거나 지시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 삼성 초격차 전략 흔들리나
‘수사에 협조하고 있다’며 공식적인 입장 발표를 꺼리던 삼성이 3일 연속 의혹에 대한 반박에 나선 것은 총수의 부재가 전례 없는 위기를 더욱 가중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삼성은 “삼성 경영이 정상화돼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는 “삼성은 반도체 설계, 자동차용 반도체 부문에서 대형 인수합병(M&A)을 진행해야 하는데 조 단위 대규모 M&A를 결정할 사람이 없어지는 것은 우려스럽다”며 “세계 패권 국가 간 갈등 국면이라 총수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이 구속 수감됐던 2017년에 삼성전자가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는 등 실적이 좋았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반도체 업계에서는 “2017년은 반도체 최대 호황기였다. 호황기를 내다본 투자 결정의 중요성을 모르는 지적”이라는 반응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반도체 산업은 속도전이다. 빠른 의사 결정과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총수 부재 시 삼성에서 누구도 빠른 결정과 판단을 책임지고 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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