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미국이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어 하반기(7∼12월) 경영전략을 세우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9일 국내 한 전자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실적 전망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전 세계적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 시장이 침체된 와중에 미국 전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마저 격화돼 해외 매출에 큰 타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미국 내 코로나19 사태 확산세가 누그러들지 않고, 인종차별 반대 시위라는 사회적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한 해 농사를 모두 망쳐버릴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영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글로벌 악재들이 연이어 터지면서 국내 주요 기업들의 해외 사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놓였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업체들은 당장 해외 시장 매출 비중을 줄이고 국내 시장에서 매출 기회를 찾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뾰족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국내 매출 상위 100대 기업의 1분기(1∼3월)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해외 매출이 지난해 4분기 대비 10.4%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월 중국 등 아시아에 국한됐던 코로나19가 3월 들어 미국을 비롯해 전 유럽 국가로 급속히 확산된 탓이다. 전경련 측은 “건설, 운송, 자동차, 에너지·화학, 생활용품 등 사실상 모든 업종의 해외 매출이 감소했다”며 “특히 매출액 기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자, 자동차 업종도 각각 9%, 14.3% 감소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영향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2분기는 매출 감소 폭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전경련도 유럽 및 북미 지역의 수요 감소가 본격화된 2분기 국내 100대 기업의 해외 매출이 1분기 대비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김봉만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4월과 5월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2개월 연속 20% 이상 감소했고, 중국을 제외한 미국, 유럽의 제조업 경기 회복이 더딘 상황”이라며 “2분기는 더 악화될 전망이고 하반기 해외시장 성과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내 주요 기업들은 단기적으로 코로나19 사태가 누그러지고 있는 국내 시장에 집중하면서 미국, 유럽 주요국 등 주요 시장의 소비 심리가 되살아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당장 국내 매출의 중요성이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한국영업본부의 어깨가 무거워진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도 “과거 3 대 7 정도였던 국내, 해외 매출 비중이 최근 5 대 5로 바뀌었다”며 “국내 시장에서 기회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국내 기업의 해외 사업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특별 방역 절차인 패스트트랙(신속 통로)이 확대 적용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패스트트랙은 자국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기업인들에 대해 상대국이 14일간의 입국 격리를 면제해주는 조치로 한국과 중국 사이에만 적용되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패스트트랙이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미국 등 주요 교역 대상국으로 확대 시행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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