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땐 고발-수사 봇물… 경영 위축 불보듯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1일 03시 00분


[‘경영권 흔들기’ 입법 드라이브]재계, 공정거래법-상법 개정 우려


“걸핏하면 회사로 고발 통보가 날아들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경영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4대 그룹의 한 고위 임원은 공정거래위원회가 10일 전속고발권 폐지를 뼈대로 한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가격·입찰담합 등 중대한 담합(경성담합)의 경우 누구나 대기업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고, 검찰 자체 판단으로 수사에 착수하는 것도 가능하다. 기업들은 이 경우 이중 처벌 부담을 안게 된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와 형사처벌이 동시에 이뤄져 제재 총량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재계는 이날 동시에 발표된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법무부의 상법 개정안이 입법화되면 대주주와 기업에 대한 규제는 강화되는 반면 대주주의 의결권 행사는 크게 제한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려면 사외이사 권한 강화 등 사내 통제 기능을 확충하는 게 핵심인데 정부는 엉뚱한 규제만 만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 “지주사 만들라더니 규제만 늘리나”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일감 몰아주기)를 더 엄격히 규제한다. 규제 대상을 총수 일가가 지분 30%를 가진 기업에서 20%로 더 넓힌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 현대글로비스, SK㈜ 등이 사익편취 규제 대상 기업에 새로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법 적용 대상에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기업의 자회사까지 포함되면 381개 기업이 추가된다. 또 지주회사를 신규 설립하거나 기존 지주회사가 자회사를 새로 편입할 때는 자회사 지분을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50% 이상 보유하도록 했다. 기존보다 10%포인트씩 올렸다. 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기존 보유 지분을 팔아야 하고, 지주회사는 의무적으로 자회사 지분을 더 많이 사들이도록 한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주요 경제단체와 재계는 이러한 내용의 규제가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주주의 보유 지분은 낮추게 하면서 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높이기 위해 돈을 더 쓰라고 한다. 대주주 중심의 경영을 포기하라는 뜻”이라고 토로했다.

○ 경영권 방어력은 취약해져
대주주가 지분을 낮추면 그만큼 경영권 방어력이 떨어진다. 특히 정부의 권고에 따라 지주회사를 미리 도입한 기업일수록 투기자본 공격에 취약해진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대주주 지분이 집중돼 있는 지주사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상장 자회사는 20%, 비상장 자회사는 40% 소유하고 있는 상태다.

상법 개정안의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도 및 3%룰에 따르면 지주사가 상장 자회사 지분을 법정 최소비율 20%만 보유해도 감사를 뽑을 때 특수관계인 포함 3%로 의결권이 제한된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 감사위원을 분리선출하도록 돼있어 대주주나 지주사가 감사위원을 선출하기 매우 어렵게 됐다. 결국 정부 권고대로 지주사가 충실히 자회사 지배력을 높인 회사일수록 손해다.

반면 해외 행동주의 펀드는 영향력이 커진다. 다른 기관투자가와 힘을 합쳐 직접 내세운 감사위원이 선출되도록 해 해당 기업 이사회 입성을 노릴 수 있고, 상법 개정안의 다중대표소송제를 활용해 자기가 지분을 사들인 기업의 자회사 경영권 간섭에 나설 수 있다. 다중대표 소송제는 상장된 모회사의 지분 0.01%(비상장사 1%)만 가져도 모회사가 50% 이상 보유한 자회사 경영진(이사)에게 소송을 걸 수 있다. 대기업 모회사의 소액주주가 자회사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대기업 총수 일가의 사익 추구를 막을 수 있다는 게 법무부의 입장이다. 예를 들어 편의점을 운영하는 코리아세븐 주식 79.6%를 보유한 롯데지주 지분을 사면 코리아세븐의 대표이사 등을 대상으로 소송을 걸며 경영권 간섭에 나설 수 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공정거래법은 지주사가 비상장 계열사 지분 최소 50% 이상을 보유하도록 하는데, 50%가 되는 순간 다중대표소송제(상법), 일감 몰아주기 규제(공정거래법) 대상이 된다”며 “두 법안이 촘촘히 기업을 옴짝달싹 못하게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민구 warum@donga.com·김현수 / 세종=남건우 기자
#공정거래법 개정#상법 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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