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계획을 세울 수조차 없을 정도로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노동조합 관련법이 이대로 통과되면 기업은 정상적 경영활동을 못 합니다.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맥없이 흔들리고, 소모적인 노사갈등이 곳곳에서 일어날 겁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실장은 이같이 우려했다. 지난달 29일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입법예고안’에 대해 “독소조항이 곳곳에 숨어있다. 경제위기 극복,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촉진) 등 당면 경제과제들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도 했다.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국내 주요 경제단체들이 고용부의 노동조합법 입법예고안에 대해 한목소리로 “노동시장을 더 경직시킬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들은 의견서를 통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각 기업이 하반기(7∼12월) 경영 계획을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데 정부가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호소했다.
○ “해고자, 실업자까지 노조 가입하라니…”
재계 및 경제단체들은 노조법 개정안 내용 중 ‘해고자·실업자 노조가입 허용’ ‘비조합원 노조임원 선임 허용’ 등을 독소조항으로 꼽는다. 현행법상 근로자가 아닌 사람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지만 개정안에는 허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기업과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는 이들이 노조 활동을 벌일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에 소속돼 있지도 않은 사람이 근로자들의 임금과 복지 수준을 결정하는 데 관여할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라며 “결국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상급단체의 노동운동가가 기업 노조에서 활동하며 더 과격하고 대립적인 노조활동을 벌일 가능성을 허용하겠다는 뜻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국내 10대 그룹 한 인사노무 담당 임원은 “만약 상습적 근무태만 등으로 해고된 근로자가 노조에 참여해 분풀이식 노조활동을 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 또 이들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정상적 기업 활동에 대해 사사건건 반대한다면 노사관계는 악화일로를 겪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생길 부작용은 상상도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해외서도 사례 찾을 수 없어”
개정안에는 2010년 노사관계 선진화를 목적으로 시행된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조항도 사라진다. “기업이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경우 이를 빌미로 사측에 유리한 활동을 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2010년부터 노조 전임자의 근로시간 면제제도와 함께 시행된 조항이다. 또 사측이 복수 노조와 개별 교섭을 진행할 경우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는 조항도 신설됐다.
경제단체들은 “해외에서도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 지급을 허용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라고 했다. 미국의 경우 노조에 대한 재정 지원을 금지하고 있고, 일본은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한 사용자들을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이상호 한경연 고용정책팀장은 “복수 노조에 대해 차별적 대우를 금지해야 한다는 조항의 목적도 이해하기 어렵다”며 “사무직군, 생산직군, 사업장 위치 등에 따라 처우나 협상 방식이 달라지는 것은 경영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했다.
○ “어느 기업이 한국에 유턴하겠나
정부와 노동계는 현재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이행 노력을 위해 노조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도 4·15총선을 앞두고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노총)과 공동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하며 ‘노동부문 5대 비전과 20대 공약’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강훈중 한노총 미디어홍보본부장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와 노조의 권리는 별개 문제”라며 “과거와 달리 근로 형태가 굉장히 다양해졌고 고용 유지 기간도 짧아졌다. 그렇기에 실직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재계에서는 코로나19로 기업들의 경영활동이 유례없는 불확실성에 놓인 상황에서 정부가 민감한 노사관계 문제를 노조에 유리한 방향으로 추진하는 데 대해 작지 않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하기 어려운 나라’가 되면 리쇼어링 등 현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 기업의 국내 복귀 노력도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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