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발표된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 결과는 현 정부 들어 공기업이 본업보다는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구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기업 특성상 공공성이 중요한 존립 근거이긴 하지만 정권 입김에 지나치게 휘둘리면서 기업의 근간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2014년부터 3년 연속 감소했던 337개 공공기관 부채는 현 정부 2년차인 2018년부터 증가세로 전환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525조1000억 원으로 2017년보다 29조9000억 원 늘어 관련 집계가 시작된 2005년 이래 가장 많았다. 반면 2017년 7조 원이 넘던 당기순이익(국책은행 3곳 제외)은 지난해 6000억 원으로 줄어 7년 만의 최저치로 쪼그라들었다.
공공기관 실적 악화는 한국전력 등 대형 공기업들이 탈원전 등 국정과제를 수행하면서 대규모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에선 공기업 부실이 국가 부담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경영 평가를 통해 통제해 왔지만 현 정부는 지난해부터 공공기관 평가지표를 전면 개편해 재무구조나 수익성 비중을 크게 낮추는 대신 ‘사회적 가치’ 항목을 신설함으로써 국정과제 수행을 독려하고 있다.
평가지표가 바뀌면서 적자가 나거나 부채가 크게 늘어난 회사들도 일자리나 상생 등 다른 지표에서 점수를 따면 성과급을 받을 수 있게 됐다. A(우수)나 B(양호) 등급을 받는 기관도 늘었다. 평가 대상 129개 공공기관 가운데 A, B 등급을 받은 기관은 2017년 62곳(50.4%)에서 2018년 71곳(55.4%)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도 72곳으로 유지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해 3조6266억 원의 적자를 냈지만 A등급을 유지했다. 건보공단은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추진하는 핵심 기관이다. 건보공단은 경영 실적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실제 건강보험 보장률은 2016년 62.6%에서 2018년 63.8%로 1.2%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지난해 부채가 34조768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조4238억 원 늘고, 2016년 2조 원이 넘었던 당기순이익이 지난해 3061억 원으로 쪼그라들었지만 B에서 A로 등급이 올랐다. 한수원은 2030년까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20조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본업인 원자력 사업에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한수원 노동조합은 “신한울 3, 4호기 건설을 재개하라”는 성명을 잇달아 발표하고 있다.
지난해 2조2635억 원의 적자를 낸 한국전력(연결 기준)은 지난해도 2018년과 같은 B등급을 받았다. 2017년 1조 원이 넘는 당기순이익을 냈던 한전은 현 정부 들어 3조4380억 원의 누적 적자를 냈지만 2년 연속 양호 등급을 유지했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독려하면서 공공 부문 비대화도 우려되고 있다. 공공기관 신규 채용은 2015년 1만9200명, 2016년 2만900명 수준에서 2018년 3만3700명, 지난해 3만3400명으로 2년 연속 3만 명을 넘겼다. 일자리가 느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공기업들의 비효율을 개선하는 노력 없이 사람만 많이 뽑아 놓으면 장기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들은 가급적 민간에서 일자리가 늘도록 지원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이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피하더라도 비효율성을 높일 우려가 있어 사회적 가치 지표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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