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서울 중구 음식점의 매출은 얼마나 줄었을까. 정부 부처 가운데 유일하게 중소벤처기업부가 매주 코로나19 이전보다 얼마나 매출이 줄었는지 조사하고 있지만 설문 형태라 정확도가 낮다. 표본도 500여 곳에 불과하다. 카드사는 자사 카드 결제 내용만 알 수 있다. 이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은 창업 4년차 벤처기업 ‘한국신용데이터’가 갖고 있다.
한국신용데이터는 2017년 4월 소상공인을 위한 경영관리 애플리케이션 ‘캐시노트’를 내놓았다. 캐시노트는 국내 카드사 8곳의 모든 결제 내용과 현금 매출까지 통합해 보여주는 앱이다. 현재 고객사는 65만여 곳. 월 1회 이상 결제가 이뤄지는 전국 카드 가맹점 3곳 중 1곳이 쓰고 있다.
출시 3년 만에 캐시노트가 ‘사장님 필수 앱’으로 자리 잡은 건 소상공인이 가장 알고 싶어 하던 현금 흐름을 정확히 보여준 덕분이다. 오늘 매출이 100만 원이어도 카드로 결제한 금액이 통장에 입금되려면 수일이 걸린다. 카드사마다 입금 시기와 수수료도 각각 다르다. 이렇다 보니 소상공인이 오늘 통장에 들어오는 현금을 정확히 알려면 국내 카드사 8곳과 국세청 홈페이지에 일일이 접속해야 한다.
하지만 캐시노트 앱에 접속하면 매일 오전 당일 입금될 카드 결제액은 물론이고 사업자가 동의하면 현금영수증 매출, 소상공인이 등록한 사업자 카드로 지출한 명세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다음 날과 그 다음 날 입금될 카드 결제액도 알 수 있다. 소상공인 상당수가 모바일 기기 이용이 서툰 중장년이라는 점을 고려해 앱을 깔지 않고 카카오톡으로 동일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했다. 김동호 한국신용데이터 대표(33)는 “소상공인이 갑자기 현금 흐름에 문제가 생겨 고금리의 현금서비스를 받는 경우가 있는데, 들어올 돈과 나갈 돈을 정확히 파악하기만 해도 이런 상황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객사가 급증하면서 보수적인 금융권에서도 한국신용데이터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코로나19 사태가 전환점이었다. 은행들은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에게 대출을 해주면서 매출 하락을 증빙하는 서류로 캐시노트 화면을 인정해 줬다. 그만큼 데이터 신뢰도가 높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피해 실태 파악에 바빠진 정부 부처도 데이터 공유를 요청했다. 이런 요청이 잇따르자 한국신용데이터는 올해 4월 지역 및 업종별 소상공인 매출 현황을 알 수 있는 사이트 ‘데이터 포털’을 오픈했다.
한국신용데이터는 앞으로 소상공인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예컨대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지는 권리금을 해당 점포는 물론이고 인근 상권의 실제 매출을 바탕으로 정확하게 매길 수 있다. 정부 정책을 기획, 홍보, 실행하는 창구로도 쓸 수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각종 지원 사업이 쏟아졌지만 정작 소상공인들에게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았고,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을 방문해야 하다 보니 ‘새벽 줄 서기’로 인한 불만이 컸다. 캐시노트와 같은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하면 정부 지원 사업 신청도 비대면으로 쉽게 전환할 수 있다.
김 대표는 머지않은 미래에는 소상공인들이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영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입지를 선정하고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계절별 매출 변화와 손님 구성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지금까지는 소상공인의 경험과 감(感)에 의존했지만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욱 정교하고 정확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진다는 뜻이다.
김 대표는 캐시노트를 ‘전기’에 비유했다. 초를 켜고 살던 시대에 전기가 들어오면서 생긴 변화처럼 캐시노트가 소상공인들이 장사하는 방식을 혁신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를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은 뭘까. “한국은 생계형 창업이 유독 많습니다. 성공을 담보하지 못해도 실패 위험은 줄여주고 싶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