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하게 요즘 차와 차 업계를 이야기하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오늘의 주제는 전기자동차입니다. 주변에서 하늘색 번호판을 단 전기차를 보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요즘, 전기차는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 출입처인 ‘자동차 메이커’의 눈으로 전기차를 바라보는 것은 그래도 조금 단순합니다. 주행거리 길면서 충전 시간은 짧은, 멋진 전기차를 만드는 문제만을 보는 것이죠. 하지만 전기차는 ‘전기’라는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점 때문에 복잡한 문제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하려는 얘기는 ‘전기차 시승기’가 아닙니다. ‘친환경’이라는 이미지 뒤에 가려진 전기차의 약점을 한번 짚어보려고 합니다. 전기차 시대를 만들어가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와 함께입니다.
탈원전, 신재생 에너지 등과 같은 말들로 대표되곤 하는 에너지 정책을 떼놓고는 전기차를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내연기관차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는 어느 곳에서 측정해도 거의 동일합니다. 하지만 전기차는 어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로 충전했느냐에 따라 때로는 별로 친환경적이지 않은 차가 될 수도 있습니다.
휴일차담 다섯 번째 편, 포스코 포항1고로와 자동차 강판 얘기에 보내주신 큰 호응에도 깊이 감사드리면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최근 자동차 업계는 물론 한국 재계 전체를 뜨겁게 달군 이슈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잇따른 전기차 배터리 기업 방문이었습니다. 이른바 ‘빅쓰리’라고 불리는 한국의 배터리 기업은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입니다.
지난달 삼성SDI를 찾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 22일에는 구광모 ㈜LG 대표를 만났습니다. 조만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도 직접 만난다고 하니 한국 재계 서열 1위부터 4위의 기업집단이 전기차 배터리를 계기로 협력을 도모하고 이를 위해 총수가 직접 얼굴을 맞대는 모습을 연달아 보여주는 셈입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구광모 대표를 만날 것이라는 기사는 제가 일찌감치 쓰긴 했습니다만… 그동안 공개 활동이 그리 많지 않았던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잇따른 전기차 배터리 행보가 어떤 의미인지를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은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전기차 배터리의 중요성을 고려한 방문임은 틀림없겠지만. 현대차그룹을 총괄한 지 2년이 가까워오는 시점에 정 부회장이 본인의 활동반경을 넓히는 것일 수도 있고,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이상 현대차그룹의 중요한 파트너인 다른 두 곳의 배터리 기업도 방문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일 수도 있습니다. 또 정부의 이른바 ‘그린 뉴딜’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행보일 수도 있겠지요.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셈입니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틀림없는 사실은 내년에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이용하는 차량을 출시하고 고급차 브랜드 제네시스까지 전기차 모델을 내놓으며 ‘전기차 승부수’를 던질 예정인 현대차그룹의 입장에서 지금은 아주 중요한 때라는 점이겠습니다. 정 수석부회장이 직접 움직이면서 현대차그룹의 상황과 전기차 계획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입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이미 전기차를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막을 올린 상황입니다. ‘미래’로만 보이던 전기차가 어느 순간 현실이 돼 있고 세계무대에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경쟁이 한창입니다.
올 1분기(1~3월) 글로벌 전기차 판매를 보면 테슬라(8만8400대), 르노닛산 얼라이언스 (3만9355대), 폭스바겐그룹(3만3846대), 현대·기아차(2만4116대) 순입니다. 미국, 프랑스-일본, 독일, 한국 등의 순서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셈입니다. 이 순위에서는 밀렸지만 전기차 영역에서는 중국 역시 강력한 힘을 자랑합니다.
최근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에서는 내년 후반에 ‘GMC 허머(Hummer) EV’ 픽업트럭을 생산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볼트 등으로 전기차 사업을 펼쳐온 GM 역시 LG화학을 주요한 파트너로 전기차 경쟁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GM은 LG화학과 함께 개발한 차세대 배터리 플랫폼 ‘얼티움(Ultium)’으로 승부수를 띄웠습니다.
● 전기차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하지만 이렇게 늘어나는 전기차는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선, 배터리 가격 때문에 내연기관차에 비해서 비쌉니다. 그래서 세금을 이용한 보조금 없이는 보급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나마 배터리와 차량의 단가는 생산이 늘어나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차 낮춰갈 수 있는 영역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규모의 경제나 기술 발전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이슈가 있으니 바로 ‘충전을 위한 전기는 어떻게 공급할 것이냐’하는 문제입니다. 현재의 전기차 충전비용은 누진세가 적용되는 가정용 전기에 비해 훨씬 싸게 공급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기차의 비중이 낮으니 전력 체계 전반에 부담이 되지도 않고 좀 싼 값에 공급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전기차가 늘어나면 이런 ‘배려’만을 바라기는 힘이 들어집니다.
이런 전력 공급의 문제는 결국 전기차의 근본을 건드립니다. ‘친환경’이라서 전기차를 이용하는데 실제로는 별로 친환경적이지 않은 차가 될 수 있다는 문제입니다.
2018년에 발표된 국내의 한 연구는 전기차가 1킬로미터를 주행할 때 휘발유차의 절반 정도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미세먼지(PM10)는 90% 넘는 수준으로 배출한다고 밝혔습니다. 2016년 국내의 전원믹스를 기반으로 한 연구인데요. 한국에서 전기를 만드는 방식을 감안했을 때 발전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미세먼지 때문에 전기차를 ‘무공해’라고 볼 수가 없다는 연구입니다.
최근 한국자동차공학회도 전기차의 생산·운행·폐기 등 전체 생애(LCA)를 기준으로 보면 내연기관차의 70%에 이르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미세먼지 영역(NOx, PM10)에서도 내연기관차와 비슷한 수준의 오염물질을 배출한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전기차와 관련된 최대의 걸림돌이 ‘탈원전’일 수도 있다는 오늘 기사의 제목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왔습니다. 제가 이 제목으로 부각시키고 싶었던 것은 전기차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얼마나 싼 값에,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느냐하는 문제가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탈원전’하면서 태양광·풍력으로 무공해에 가까운 전력을 아주 충분하게 공급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하지만 탈원전은 했는데 신재생 에너지가 충분한 전력을 공급해주지 못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액화천연가스(LNG)나 석탄화력 발전 등으로 전기를 더 생산해서 전기차를 충전해야 하는데 이러면 내연기관차와 무슨 차이냐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본 전기차 관련 환경효과 연구에서는 늘 ‘전원 믹스’라는 용어가 전제로 달려 있습니다. 해당 국가 혹은 해당 지역의 화력·원자력·신재생 등 전력 생산 방식 비중을 고려했을 때 이 정도의 환경개선이 기대된다는 전제입니다.
BMW 본사 차원에서 내연기관차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전기차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비교한 아래의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원 믹스’가 전기차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고 같은 전기차(BEV)라도 유럽연합(EU)의 전원믹스를 기반으로 할 때와 신재생 에너지를 기반으로 할 때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재생 에너지만으로 충분히 전체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일부 유럽 국가라면 전기차의 친환경성은 극대화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신재생 에너지와는 거리가 멀고 석탄화력 발전만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후진국이라면 전기차가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전기차 충전과 관련된 업계에서는 ‘탈원전’을 걱정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듯합니다. 차량의 엔진, 즉 내연기관은 열로 많은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이보다 더 높은 효율로, 폐열까지 회수하면서 전력을 생산하는 첨단 발전 설비를 생각하면 100% 신재생 에너지가 아니더라도 에너지 효율, 배출가스 문제 등에서 여전히 전기차가 우위에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는 것이 업계의 판단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차를 위해 대량의 전력 공급이 필요해지면 전력 생산가격이 더 중요해질 수 있다는 점이 업계의 우려입니다. 한국의 자연환경과 전반적인 전력 소비 상황을 감안했을 때 탈원전하면서 경제성 있는 전력 공급이 가능할 것인가, 하는 고민인 것인데요. 물론, 정부가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을 키우겠다고 하니 지금 이런 문제의 결론을 내는 것은 쉽지 않겠습니다.
● 유류세·보조금 문제 있지만 대세는 전기차
전기차 앞에는 잠복된 이슈도 많습니다. 정부는 유류세로 막대한 세수를 걷습니다. 내연기관차를 운행하는 운전자들이 휘발류·경유를 살 때마다 절반에 가까운 돈을 세금으로 내면서 국고를 채우는 것인데요. 반면에 전기차 운전자들이 충전할 때 내는 전기요금에는 부가가치세 정도가 붙을 따름입니다.
그러니 전기차가 일정 비율까지 늘어나면 세금 형평성 문제 역시 불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휘발류·경유 수요 감소로 줄어든 세수를 채워야 합니다. 설혹 정부가 이런 세수를 포기하더라도 차 몰면서 도로 쓴다는 이유로 유류세 내서 교통 인프라 구축에 기여하고 있는 내연기관차 운전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점점 더 올라갈 전기차 충전 비용에 이런 세금 문제까지 더해지면 전기차는 유지비에서의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게될 수도 있습니다.
구매 보조금 문제 역시 언제든 불거질 수 있어 보입니다. 국민 세금 들여서 도대체 어느 나라 기업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외국 기업이 해외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국내에 미치는 경제 효과가 전혀 없는 차에까지 꼭 보조금을 줘야 하느냐하는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인데요.
폭스바겐이 첫 양산형 전기차 ‘ID. 3’ 공개하는 시점에 맞춰 저가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혜택을 늘린 독일을 보면 우리 정부가 너무 노골적이진 않더라도 좀 약삭빠르게 대응을 할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이런저런 논의에도 불구하고 전기차 보급에는 이제 탄력이 붙었습니다. 구르기 시작한 수레바퀴는 멈추기 어렵습니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 전기차는 대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친환경적인 발전원으로 급격히 늘어나는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을 충분히 공급할 수만 있다면 대단히 친환경적인 차라는 사실 역시 변함이 없습니다.
설혹 현재로서는 친환경성이 기대에 조금 못 미친다고 하더라도 전기차라는 미래 시장을 공략하려면 정부가 나서서 보조금을 주며 생산과 이용을 늘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정부는 그런 역할을 비교적 잘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전기차 시대로의 성공적인 진입을 위해서는 여러 측면에서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은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첨부하는 사진은 BMW가 본사 차원에서 예상하는 미래 자동차 시장의 구도입니다.
2013년부터 2050년 정도의 기간으로,
△내연기관차는 꾸준히 감소.
△순수 전기차는 꾸준히 증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는 조금씩 늘어나다 빠르게 증가한 뒤 감소.
△수소차는 2013년이 아니라 그 이후에 시장을 형성해 빠르게 증가.
라는 예측입니다. 미래 예측은 쉽지 않을뿐더러, 각 메이커의 미래 예측에는 그네들 각자의 ‘희망사항’이 섞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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