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10대들의 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드라마는 무엇일까? 1990년대 말 학교 시리즈, 2000년대 초 반올림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면 2020년에는 웹드라마 ‘에이틴’ 시리즈를 빼놓고서 10대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이틴은 2018년, 2019년에 방영된 시즌 1, 2를 통틀어 4억8000만 뷰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시즌이 끝나고 1년이 지난 현재도 10대들 사이에서 거대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드라마 방영 직후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팬미팅이 성황리에 열렸다. 에이틴에서 얼굴을 처음 알린 신인 배우들은 현재 각종 광고와 지상파 방송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드라마에 등장한 미용 제품과 문구, 잡화 상품들도 불티나게 팔렸다. 10대 팬들은 드라마 속 캐릭터들의 표정과 말투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에이틴의 인기에 가려진 더 놀라운 사실은 이런 대박 작품을 제작한 회사가 설립된 지 2년이 채 안 된 스타트업이라는 점이다. 플레이리스트는 네이버 자회사인 스노우의 일개 팀이었다가 2017년 5월 네이버 웹툰과 스노우가 공동 출자해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킨 스타트업이다. 요즘 같은 디지털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플레이리스트가 차별화된 입지를 구축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0년 6월 15일자(299호)에 소개된 플레이리스트의 성공 요인을 요약해 소개한다.
○ 10대 팬덤을 노리다
2017년 말 박태원 대표가 플레이리스트에 처음 CEO로 합류했을 때만 해도 플레이리스트는 대학생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그린 웹드라마 ‘연애플레이리스트(이하 연플리)’ 시즌1으로 페이스북에서 20대 여성을 중심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던 때였다. 박 대표는 과감하게 콘텐츠의 핵심 타깃을 20대에서 10대로, 메인 플랫폼도 페이스북에서 유튜브로 바꿨다. 그리고 에이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10대들의 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작품을 만들자’고 목표를 세웠다. 이 목표는 검증할 수 있는 핵심 결과, 시청 시간이라는 정량적 지표로 구체화돼 직원들에게 공유됐다. ‘구글의 일하는 방식’으로 유명한 OKR(Objective and Key Results)을 구글 출신인 박 대표가 플레이리스트에 도입한 것이다. OKR는 목표와 핵심 결과를 구체적으로 설정함으로써 성과를 관리하는 업무 방식을 말한다.
그렇다면 왜 하필 10대였을까?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또래 문화에 민감한 10대야말로 팬덤을 형성하고 다른 세대로 확장하기도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컨대 한번 플레이리스트의 스토리에 몰입하게 된 10대 팬들은 플레이리스트의 20대 대학생용 콘텐츠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또 10대, 그중에서도 딸들과 소통을 많이 하는 사람이 어머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연스럽게 40대, 50대로도 시청자 층의 확장이 가능해진다.
○ 작품을 연결하는 세계관 구축
플레이리스트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은 누가 연출하거나 각본을 썼는지에 상관없이 작품들이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플레이리스트 작품들에는 웹드라마 에이틴의 배경인 서연고등학교, 웹드라마 연플리의 배경인 서연대학교, 이들 주인공이 자주 찾는 카페 리필 등이 교차해 등장한다. 에이틴의 주인공들이 서연대 진학을 지망하고, 이들이 방과 후 즐겨 찾는 카페 리필에는 연플리 주인공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식이다. 한번 팬이 된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시리즈에도 관심을 갖고 꾸준히 구독하게 된다. 한 작품의 주인공이었던 캐릭터가 다른 작품에도 조연 혹은 카메오로 등장하면서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플레이리스트 세계관 안에서 한번 등장한 캐릭터는 계속 살아 숨 쉬면서 다른 작품에도 등장해서 팬들로 하여금 마치 실제 인물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한 시리즈가 성공하면 다른 시리즈도 덩달아 인기를 얻는다. 개별 작품이 아닌 플레이리스트란 회사를 향한 대규모 팬덤, 애칭 ‘러플리’가 형성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 스토리 구성에 비제작팀도 참여
플레이리스트 콘텐츠 제작 과정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마케팅팀과 비즈니스팀 등 비제작 팀들도 작품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해 스토리 혹은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과정에 개입한다는 점이다. 대본을 쓰는 단계에서부터 작가, 마케팅, 비즈니스팀이 협의해 스토리와 가장 어울리는 브랜드가 어디일지를 고민하고, 브랜드에 간접광고(PPL)를 제안하기도 한다. 스토리에 녹아든 PPL은 단순 노출되는 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와 시너지를 발휘하면서 실제 상품 매출의 증대로 이어지고 있다.
작품 엑스엑스(XX)는 아예 스토리를 구상하면서 신규 커머스 상품까지 직접 기획해 성공을 거둔 사례다. 플레이리스트는 2020년 1월 엑스엑스(XX) 작품의 종영과 동시에 향수 브랜드 ‘니어리스트 벗 로스트’를 출시했다. 비즈니스팀과 작가팀이 협의해서 향수 커머스를 염두에 두고 남자 주인공의 직업을 조향사로 설정했고, 향도 드라마 주인공 캐릭터 4명에 맞춰 4가지 타입을 개발했다. 이 상품은 올리브영에서 ‘2020 신상품 Top 5’ 부문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승윤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플레이리스트는 견고한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실존 인물처럼 느끼는 ‘러플리 팬덤’을 구축함으로써 브랜드 자체의 인지도뿐 아니라 10대와 20대 중심의 확고한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며 “이 모델이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러플리 팬덤’을 잘 관리할 뿐 아니라 확장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