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130원 인상? 편의점주 낭떠러지로 떠밀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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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내년 최저임금 역대 최저 인상에도
“간신히 버텨왔는데…” 거센 반발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 점주는 ‘아르바이트생 구함’이라고 적힌 종이를 창문에서 떼어냈다. 그는 인건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2년 넘게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만 아르바이트 직원을 써왔다. 주 7일 하루 19시간 근무하며 손에 쥔 수익은 월평균 300만 원 수준. 그러다 병이 났다. 올해 3월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은 뒤 아내와 상의해 아르바이트생을 더 뽑기로 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 소식에 아내 몰래 채용 계획을 접었다. 그는 “아이들 결혼시키려면 허리가 부서지더라도 인건비를 최소화해야 한다”며 “정 안 되면 잠을 더 줄이고 야간 3시간만 점포 운영을 중단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이 소상공인들에게 거세게 몰아닥치고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은 올해(8590원)보다 1.5% 인상된 8720원. 역대 최저 인상률이지만 소상공인들은 “벼랑 끝에서 간신히 버티는 상황이었는데 고작 130원이라는 숫자가 우리를 결국 낭떠러지로 밀어버렸다”고 말했다. 특히 5만여 명에 달하는 편의점 점주들은 “최저임금을 주고 싶어도 줄 수 없어 강제적 범법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 결정 다음 날인 15일 가장 먼저 인건비를 줄일 방법을 구상하고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A 씨(67)는 이날 오전 점포로 출근하기 전 취업준비생인 둘째 아들(34)을 깨워 앉혀놓고 일을 도우라고 말했다. 기존에 채용했던 아르바이트 직원 중 주말에 일하던 2명을 1명으로 줄이고 대신 아들을 투입할 생각이다. 이후에도 인건비 감당이 안 되면 아내에게 일정 시간 가게를 맡아 달라고 부탁할 작정이다. 그는 “아들이 3년 동안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가 안 돼서 일반 기업 취직을 준비 중인데 더 이상 아들에게 투자할 여력이 없다”며 “가족의 사활이 걸린 만큼 손이 비는 가족은 모두 투입해 최대한 인건비를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편의점주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편의점 지출 중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한국편의점주협의회에 따르면 인건비는 편의점 총 매출 중 제품원가 등을 제외한 매출 이익 중 43%에 달한다. 편의점 월평균 매출 이익은 1446만 원인데 로열티(434만 원)와 점포 유지관리 비용(923만 원)을 빼면 점주들의 평균 수익이 된다. 점포 유지관리 비용에는 인건비(623만 원)와 임차료(150만 원), 전기료(50만 원), 기타 비용(100만 원)이 포함돼 있다. 협의회는 이번 최저임금 인상으로 편의점의 월평균 수익은 98만9600원에서 9.4%가 감소한 89만6800원에 그칠 것이라고 추정했다. 최저임금은 1.5% 올랐는데, 수익은 9.4% 줄어든다. 협의회 관계자는 “노동계가 내세우는 실태생계비 218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편의점주들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쪼개기 근무’다. 주 15시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에게 사용자가 의무적으로 지급해야 하는 주휴수당(유급휴일에 받는 하루 치 일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편법으로, 아르바이트 직원 한 사람이 월요일과 수요일은 A편의점에서, 화요일과 목요일은 B편의점에서 일하는 방식이다.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쪼개기 근무도 진화시키고 있다. 편의점주끼리 아르바이트 직원을 ‘공유’하는 것으로,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 편의점끼리 요일뿐 아니라 시간대도 세분해 주 15시간 이상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의 한 편의점주는 이날 “옆집 사장님이 편의점 브랜드와 상관없이, 동네 안에서 아르바이트생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마련하자고 하더라”라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고육책으로, 정부가 영세소상공인인 편의점주를 편법자로 몰고 있다”고 호소했다.

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최저임금 인상#편의점#소상공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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