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14일 주택 공급량에 대한 질문을 받고 “올해 서울에만 아파트 5만3000채가 입주하고 앞으로 3년 동안 평균 4만6000채가량이 입주한다”며 “이런 입주량은 최근 10년 평균보다 많은 수준이어서 공급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입주 주택 수가 곧 실제 공급량은 아니다. 여기에는 멸실 주택이 고려되지 않았다. 1만∼2만 채 수준이던 서울의 멸실 주택은 2016년 이후 4만 채 이상으로 크게 늘었다. 아파트 멸실도 2016년부터 1만 채 이상으로 늘어났다. 올해 5만3000채의 아파트 신규 입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 늘어나는 주택 수는 그보다 적다는 것이다. 특히 5만3000채에는 민간 분양 외에도 공공임대 등 공공이 공급하는 물량까지 포함돼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의 주택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순증 주택에 대한 고려와 함께 수요자들이 원하는 질적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 과거에 비해 가파르게 증가하는 주택 수요
서울의 연평균 신규 주택 수요에 대해 정부는 2018년 수도권 공급대책을 발표할 당시에도 5만5000채(2013∼2022년 추계 평균) 규모라고 밝힌 바 있다. 아파트와 단독·다세대주택 등 연간 6만∼8만 채가 준공되는 현재 서울 상황에서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고 주장할 만하다. 하지만 이 수요를 산출해낸 2018년 ‘2차 장기 주거종합계획 수정계획’을 보면 멸실 주택, 가구 수 증감 등 수요 예측에 바탕이 되는 통계가 대부분 2016년 이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서울의 주택 수요를 판단하는 이들 통계의 추세가 그 이후로 크게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가구 수는 2016년 이후로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2019년 12월 432만7605가구 대비 2020년 6월 438만4076가구로 6개월 만에 6만 가구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2017∼2019년 3년간 증가분인 13만7766가구의 약 절반에 이르는 수치로 서울의 가구 증가세가 가파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서울에 노후 주택이 적체되고 정비사업 수요가 늘어나며 2016년 이후 멸실 주택 수가 크게 늘어난 점도 정부 수요 예측에는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허가 실적이 감소세여서 향후 공급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현재의 공급량은 2010년 이후 인허가 실적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9년 서울의 아파트 인허가 실적은 3만6220채로 직전 5년 평균 대비 11% 감소했다. 인허가 후 3∼5년 뒤에 실제 주택이 공급되는 것을 감안하면 향후 서울의 주택 공급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 노후 주택 많은 서울, 주거의 질도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주거의 질이 적절한지도 살펴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18년 기준 서울 전체 주택의 45%가 지은 지 20년이 넘은 주택(통계청이 노후 주택으로 집계)이다. 아파트 중에서는 41.6%가 지어진 지 20년이 넘었다. 재건축 연한에 해당하는 30년 이상 노후 주택은 전체의 17.6%이고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는 전체 아파트의 15.8%다.
서울은 소형주택이 많이 몰려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전국에 2018년 기준 전용 20m² 이하 주택이 28만3963채가 있는데 이 중 4분의 1이 넘는 8만3537채가 서울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 도심 아파트를 원하는 수요는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건설주택포럼이 올해 5, 6월 서울 인천 경기에 거주하는 성인 14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38.5%가 서울 중에서도 강남3구가 있는 동남권에 거주하고 싶다고 응답했고 다음으로 19%가 중구 종로구 등 도심권에 거주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런 선택의 가장 큰 이유는 직장 및 사업장 출퇴근(36%)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주근접성’을 갖췄으면서 어느 정도 생활 편의를 누릴 수 있는 신축 아파트는 ‘귀한 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양도 양이지만 입지나 환경 면에서 수요자가 원하는 질을 갖춘 주택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서울의 주택 수요는 서울에 이미 들어와 살고 있는 인구만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서울에서 경기로 빠져나간 순유출 인구 9만6000명 가운데 30대 이상이 8만1000명이었다. 통계청은 이들이 주거 문제로 전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결국 이들 중 상당수는 자산이나 소득 등 다른 여건이 받쳐주기만 하면 향후 직장이나 자녀 학교 등의 문제로 다시 서울의 주택을 매수할 수 있는 대기 수요라고 할 수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는 도심은 고밀 개발, 외곽은 주거 쾌적성을 고려한 저밀도 개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정부는 반대로 도심 고밀 개발을 규제하고 있다”며 “젊은 세대의 수요에 맞추려면 도심 고밀 개발 규제 방침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규제 정책으로 공급 시기 늦춰져
서울의 가구 수 증가, 도심 신축 아파트에 대한 선호 현상, 멸실 주택 수 증가 등은 이미 2016년경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런 현상은 고려하지 않은 채 출범 이후 줄곧 서울의 민간 공급을 옥죄는 정책을 펴왔다.
정부가 각 재건축조합과 숨바꼭질하듯 규제를 반복하는 사이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의 분양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지난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관리,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진통을 겪다 1년 가까이 분양이 미뤄진 단지의 총 분양 물량은 최소 2만 채가 넘는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1만2032채),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6702채), 서초구 신반포3차·경남아파트(2990채), 신반포15차(641채) 재건축 등이 대표적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주요 단지의 분양은 미뤄지고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고자 하는 대기 수요는 쌓이면서 실수요자들의 초조함만 키웠다고 볼 수 있다.
조주현 건국대 교수는 “시장에서 신규 주택을 원하는 수요가 모여 자연스럽게 정비사업이 추진되는 것인데 정부가 이를 막으면서 오히려 청약 과열 등의 현상을 일으켰다”며 “재건축 단지의 임대주택 비중을 늘리거나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통한 환수 이익을 주거 복지에 쓰도록 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하되 재건축에 대한 각종 규제는 풀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 서울에 11만 채+α 공급한다지만
정부는 2018년부터 지속적으로 수도권 공급대책을 발표하며 총 77만 채를 수도권에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중 서울 내에 공급하기로 한 물량은 11만 채가량이다. 여기에 올해 5월 용산역 정비창 개발을 포함해 약 7만 채의 물량을 추가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중 1000채 이상 대단지로 공급되는 것은 용산역 정비창 외에 수색역세권, 서울 강서 군 부지, 동부도로사업소 부지 등 손에 꼽히는 수준이다.
실제로 공급될지 불확실한 물량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올해 5월 발표한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에서는 공공 재개발 사업을 활성화시켜 연평균 1만3000채, 향후 3년간 4만 채의 물량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이 참여해 임대주택 비중을 높이는 등 공공성을 확보하되 인허가, 규제 완화 등에서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민간이 함께 호응해야 실제 공급 물량이 나올 수 있는 방안인데 민간의 호응은 높지 않은 편이다.
정부가 택지로 확보했다고 발표한 부지 중에도 동부도로사업소처럼 인근 주민의 반대에 부딪혀 사업 추진이 지연됐거나 북부간선도로 위에 1000채 규모의 단지를 짓겠다는 구상 등 당장 실행이 불확실한 방안이 포함돼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 공급 계획의 불확실성 때문에 정부가 공급을 밝혀도 시장에서 이를 즉각 공급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실장은 “최근 주택 시장이 과열된 것은 맞지만 공급 면에서도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정부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광역시급 이상 도시의 재개발·재건축 단지나 1기 신도시의 노후 아파트 등 이미 사람들이 살고 있고 수요가 증명된 지역의 재개발·재건축으로 공급이 확실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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