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7대책 후폭풍 '천정부지' 전셋값 55주 연속 상승
당정 임대차 보호법 이달 처리…"세입자 주거 안정"
"임대시장 피해 최소화 위해 가급적 빨리 시행해야"
“집주인이 월세로 전환한다고 해서 다른 전셋집을 찾고 있는데, 두 달째 구하지 못하고 있어요.”
회사원 김모(37·여)씨는 지난 17일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아파트 인근의 부동산 공인중개업소를 돌아다니다 발길을 돌렸다. 이 단지의 전셋값은 2년 새 2억원 가까이 올랐다. 김씨는 “평범한 회사원에게 2억원은 은행 대출로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며 “전셋집 구하기가 워낙 힘들고, 전셋값도 급등하면서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대란’이 현실화하고 있다. 비수기인 여름철임에도 ‘전세 물건 품귀’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전세를 선호하는 세입자와 달리 집주인은 월세를 원하는 경우가 많아 임대주택시장은 수급불균형이 심화되는 양상이다.
전셋값이 한 달 새 수억원씩 오르는 등 55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매주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전세를 구하는 세입자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특히 지난 7·10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집주인들이 늘어난 세금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전세난이 가중되면서 가을 이사철 전세대란이 일어날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서울 전셋값은 지난해 7월 이후 55주 연속 상승세다.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값 동향’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13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3% 올랐다.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의 전셋값은 0.25% 올라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또 강동구 0.3%, 동작구 0.11%, 마포 0.19%, 성동 0.15% 등도 상승했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저금리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과 2년 실거주 양도세 비과세 요건 강화, 청약 대기 수요 등으로 전세 매물이 부족한 가운데, 신규 분양 예정 지역이나 역세권 신축 위주로 전셋값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전용면적 84㎡) 5층은 지난 10일 11억5000만원에 전세 거래가 성사됐다. 지난 6월29일 9억원보다 2억5000만원 오른 금액이다. 또 강동구 고덕동 ‘고덕 아이파크’(전용면적 114㎡)도 지난 7일 8억2000만원에 전세 거래됐다. 지난 5월 7억5000만원, 6월 8억원에 거래되는 등 꾸준한 상승세다.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 불안은 각종 통계로도 확인된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 시계열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중위 전세가격은 4억6129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조사가 시작된 2013년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2017년 5월(4억807만원)과 비교하면 5322만원(13%↑)이나 상승했다. 또 지난달 마지막 주(29일 기준)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73.8에 이른다. 2016년 3월21일 이후 최고치다. 이 지수가 100을 넘어설수록 전세 수급이 불안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세난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원장 이재영)이 지난 2일 발표한 ‘2020년 하반기 건설·주택경기 전망’에 따르면 전셋값은 상반기 1.1% 상승한 데 이어 하반기에도 1.5% 올라 연(年) 2.6%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약이나 매매 대기 수요가 전세시장으로 유입되고, 저금리로 수익성이 낮아진 집주인이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면서 전세시장은 수요와 공급에서 심한 불균형 상태다. 또 6·17부동산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의 재건축 분양권을 받기 위해선 2년 이상 실거주가 의무화하면서 전세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 내년부터 신규 아파트 공급이 줄면서 덩달아 전세 물건도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내년 서울에서는 아파트 기준 총 2만3217가구가 분양 예정이다. 이는 올해 입주물량(4만2173가구)의 절반 수준인 55.1%에 불과하다. 2022년엔 1만3000여 가구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당정은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임대차 3법’에 표준임대료 도입과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 권한 강화 등을 추가한 ‘임대차 5법’을 이달 안에 통과시킬 방침이다. ‘전월세 신고제’를 비롯해 전세금 인상률을 최대 5%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와 임대차 계약이 만료됐을 때 임차인이 갱신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 3법만으로는 세입자 보호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다.
표준임대료는 지자체별로 지역 물가와 경제 사정을 고려해 적정한 수준의 임대료를 고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이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모든 집주인이 해당 금액 수준으로 임대료를 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임대료 상승 문제를 두고 집주인과 세입자간 분쟁이 발행하면 임대료 적정성 여부를 판다는 기준으로 활용된다.
표준임대료가 도입되면 전·월세상한제와 함께 집주인의 일방적인 임대료 인상을 막을 것으로 보인다. 또 세입자는 집주인이 과도하게 임대료를 올린다고 판단되면 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통해 임대료 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열린 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세계적으로 유동자금은 사상 최대로 풍부하고 금리는 사상 최저로 낮은 상황”이라며 “부동산으로 몰리는 투기 수요를 억제하지 않고는 실수요자를 보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임대차 3법’을 비롯해 정부의 부동산 대책들을 국회가 입법으로 뒷받침해주지 않는다면, 정부의 대책은 언제나 반쪽짜리 대책이 되고 말 것”이라며 국회 협조를 당부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임대차 5법의 효과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전·월세 시장 안정화를 꾀할 수 있다는 주장과 제도 시행을 앞두고 전셋값이 급등하거나 전세 물건이 월세로 전환되는 등 전세시장이 더욱 불안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택임대시장의 혼란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임대차 보호업 시행을 서둘러야 된다고 조언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임대차 5법 시행 전 소급적용 논란 등으로 전셋값을 미리 올리거나 전세를 월세로 돌려 늘어난 세금 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내년부터 신규 입주 물량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전세 매물 품귀 현상과 전셋값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권 교수는 “전월세 신고제 등 임대차보호 5법은 중장기적으로 전·월세 가격을 안정화시킬 수 있으나, 시행 직전 단기간에 가격을 상승시킬 여지가 있다”며 “주택임대시장의 혼란과 불안 등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빨리 시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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