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쾰른, 레알 소시에다드, 뉴캐슬, 볼로냐 FC의 공통점은? 유럽 4대 축구 리그인 독일, 스페인, 잉글랜드, 이탈리아 1부 리그 팀이면서 국내 축구영상 인공지능(AI) 분석업체 ‘비프로일레븐’의 고객이라는 점이다. 소속 선수와 감독은 비프로일레븐이 제공한 데이터를 보고 훈련하고 전술을 짠다. 창업 5년 차인 신생 벤처기업이 해외 진출 3년 만에 거둔 성과다.
독일에 머물고 있는 강현욱 대표(29)는 동아일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원래 사업을 하려던 건 아니었다”며 “인생에서 꼭 한 번 만들고 싶었던 제품을 내놓은 뒤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들이 찾아오면서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비프로일레븐은 직접 개발한 카메라로 경기 영상을 촬영한다. 이때 AI가 경기장에서 뛰는 22명의 선수들을 구별해 움직임을 추적하면서 패스나 슈팅 횟수 등을 기록한다. 이를 바탕으로 선수와 팀이 원하는 데이터를 제공한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플랫폼에서 이뤄지고 컴퓨터 사용이 서툰 일반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유럽 명문 축구팀을 사로잡은 비결이다.
비프로일레븐의 시작은 축구광인 강 대표의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서울대 사회교육과에 입학한 강 대표는 2014년 전역 후 무작정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문과생이 기술을 모르면 세상의 절반밖에 알지 못한다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당시 교내 프로그래밍 동아리 ‘멋쟁이 사자처럼’에 가입하려면 무엇을 만들지 아이디어를 내야 했는데 이때 제출한 아이디어가 축구기록 관리 프로그램이었다.
강 대표가 단과대 축구팀 소속 선수로 매년 출전하던 서울대 아마추어 축구 대회에서는 모든 기록을 일일이 사람이 수기로 관리했다. 그는 이런 불편함을 덜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서울대 등 여러 대학에 무료로 제공했다. 입소문이 나며 사용자가 1000명이 넘었다. 강 대표는 “이 프로그램이 제 분신처럼 느껴졌다”며 “초짜가 만든 서비스를 많은 사람들이 써준 이때가 인생의 첫 터닝포인트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2015년 2월 사업화를 위해 회사를 차렸다. 이후 경기 영상을 촬영해주는 업체와 손을 잡고 ‘경기 영상 AI 분석 서비스’로 사업 모델을 수정했다. 비프로일레븐은 이 업체와 함께 2016년 대한축구협회의 ‘K리그 주니어 리그 영상 촬영 사업’ 입찰에 뛰어들어 해외 유명 업체를 꺾고 사업권을 따냈다. 영상 촬영은 물론이고 AI를 활용해 데이터를 분석해준다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 기술이 통한다’는 걸 경험한 강 대표는 1년 뒤 해외로 진출했다. 그는 “이왕 시작한 사업을 본토에서 성공시키지 못하면 젊은 시절을 투자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술이 좋아도 축구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에선 투자 유치가 어렵다는 점도 해외 진출을 서두른 이유였다.
비프로일레븐의 첫 해외 고객은 독일 축구 5부 리그 팀이었다. 2017년 2월 처음 만난 해당 팀 관계자는 서비스 시연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를 결정했다. 독일 1부 리그인 분데스리가에서는 FC 쾰른이 비프로일레븐의 첫 고객이 됐다. 신생 업체인데도 선뜻 비프로일레븐을 택한 건 FC 쾰른 팀 소속 분석관이 직접 센 경기 기록과 비프로일레븐의 분석 결과가 가장 정확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비프로일레븐은 1부 리그 팀뿐만 아니라 하부 리그와 유소년 팀 영업에도 공을 들였다. 그래야 미래의 1부 리그 선수가 될 유망주들의 데이터를 미리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화 전략도 기존 업체들과 달랐다. 비프로일레븐은 독일 오스트리아 미국 태국 프랑스 영국 등 12개국에 오피스를 두고 모든 서비스를 현지어로 제공하고 사후관리를 위해 현지 인력을 배치했다. 숙식을 걱정할 만큼 자금난이 심각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버틴 결과 현재 비프로일레븐의 고객은 전 세계 700여 팀에 달한다.
강 대표는 스포츠의 미래를 ‘영상’이 주도할 것이라고 봤다. 지금은 영상으로 프로 선수와 감독이 경기 전략을 짜는 수준이지만 더 나아가 선수 기용, 선발 방식도 영상을 기초로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다. 가장 객관적인 영상 데이터가 쌓이면 학연이나 인맥 등도 작용하기 어려워진다. 또 일반인들도 프로 선수처럼 자신의 경기 영상을 소유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도 예상했다. 그는 “1970년대만 해도 프로 선수의 전유물이었던 축구화를 이젠 누구나 신는 것처럼 경기 영상도 대중화될 것”이라며 “축구를 넘어 모든 스포츠인의 동영상과 데이터를 보유한 ‘구글’ 같은 회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