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플라스틱 사용량 급증… 위생용 비닐장갑 판매 170%↑
업계 “무조건적 규제보다는… 기술 수준에 맞는 적절 조치 필요”
서울 강동구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A 씨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구매하는 등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병원에서도 일회용 컵 대신 세척이 가능한 도기로 된 컵을 사용한다. 하지만 A 씨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파를 걱정하는 환자들이 컵 사용을 꺼리는 것을 보고 일회용 컵으로 교체했다.
21일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A 씨와 같은 사례가 늘면서 플라스틱 제품 사용도 늘어나는 추세다. 비닐장갑, 문손잡이 덮개 등 일회용 플라스틱은 방역 필수품이 됐다. 환경부도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올 1월부터 ‘일회용품 사용규제 제외 대상’ 고시에 따라 커피숍, 식당 등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플라스틱 포장재 사용량은 20%나 늘었다. 폐지와 폐비닐도 각각 15%, 8% 늘었다. 실제로 비닐 제품을 생산하는 B업체의 4월 위생용 비닐장갑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0% 이상 급증했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위생 측면에서 플라스틱을 대체할 물질이 없다 보니 플라스틱이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보건과 감염 확산 방지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 관련 규제가 엄격한 유럽과 미국도 플라스틱 사용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영국에서는 최근 플라스틱 빨대 등의 사용 금지 조치가 6개월 연기됐다. 플라스틱 포장에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은 3개월 미뤄졌고, 온라인 배달 시 플라스틱 쇼핑백에 붙는 추가 요금도 면제하기로 했다.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지난달 식당과 술집 등에서 가급적 공용으로 사용하는 양념통 대신 일회용 양념을 제공하라는 권고 지침을 발표했다.
이에 국내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플라스틱을 아예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재활용이 쉬운 제품을 개발해 환경에도 기여하자는 취지다. 매년 3억 t 정도 발생하는 전 세계 플라스틱 쓰레기 중 재활용되는 비중은 10%가 채 되지 않는다. 업계에선 쓰레기양을 줄이는 동시에 일회용품을 대체하기 위해 자연에서 분해될 수 있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연구개발(R&D)과 시장 확대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선 무조건적인 규제보단 시장 규모와 기술 수준에 맞는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는 환경부 고시를 통해 생분해성 제품 인증을 받으면 일회용품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폐기물 부담금을 물지 않아도 되는 유인책을 내놓은 상태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생분해성 플라스틱 제품 인증 기준이 까다로운 것이 문제다. 한국에선 6개월 이내 기준물질 대비 90% 이상 분해돼야 생분해성 플라스틱 기준을 부여한다. 60% 이상을 기준으로 하는 미국, 독일, 일본 등에 비해 엄격하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 비해 기술력은 부족한데 인증 기준은 훨씬 높다 보니 국내 업체들은 아예 생분해성 플라스틱 사업을 접거나 소량 생산만 해왔다. 석유화학 업계 관계자는 “선진국 수준으로만 생분해성 플라스틱 인증 기준을 낮추면 그만큼 쓰레기도 줄어들고, 생분해성 플라스틱 개발에 뛰어드는 기업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본부장은 “엄격한 기준에 맞는 완벽한 생분해성 플라스틱 물질이 개발되길 기다리기보다는 현재 기술로 생산 가능한 친환경 플라스틱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환경오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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