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다시 올 수 없다.” 소소한 일상부터 국가 경제까지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대비해 정부는 방역 체계를 정비하고, 12조 원 규모의 긴급재난지원금과 추가 예산 집행을 통해 경기 활성화에 나섰다. 중장기적으로는 이번 위기를 혁신의 기회로 활용하기 위해 5년간 약 73조 원이 투입되는 한국판 그린 뉴딜이 추진될 예정이다.
그린 뉴딜이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중심의 저탄소 경제구조로 전환하고, 관련 산업 투자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이다. 2025년까지 65만90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그린 뉴딜에는 태양광·풍력 발전 확대, 재생에너지 전력망 인프라 건설 등 전력과 연관된 사업이 다수 포함돼 있다. 저탄소 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재정 투입 외에도 전력산업 및 에너지 시장 제도 개선과 관련 정책 추진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무엇보다 전기요금을 포함한 에너지 가격 체계의 합리화가 중요하다.
가격은 도로 위의 신호등과 같다. 신호등이 고장 나면 차량 흐름에 어려움을 주듯 가격 체계가 왜곡되면 시장은 혼란스러워진다. 한국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멕시코, 터키에 이어 세 번째로 낮고, 가장 비싼 덴마크의 4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2013년 11월 이후 주택용 외에 요금 조정이 한 번도 없었다.
전기 생산을 위한 모든 비용이 적기에 적정하게 반영되지 못하는 현행 전기요금 체계의 부작용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전기 대체소비와 과소비 그리고 비효율적인 전기 사용이 발생한다. 또한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효율 향상, 온실가스 감축 등에 필요한 재원 확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장 난 신호등이 계속 있는 한 지속가능한 에너지 전환은 요원할 뿐만 아니라 관련 산업 육성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려는 그린 뉴딜의 기대효과 역시 반감될 것이다.
신호등 수리의 출발점은 전력 생산 비용을 충실히 반영하는 전기요금 체계 구축에 있다. 무엇보다 연료비 변화를 요금에 반영하여 제대로 된 가격 신호를 제공하는 연료비 연동제는 전기요금 체계 합리화의 첫걸음이다.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주요국은 이미 도입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열·가스·항공 요금에 적용하고 있다.
연료비 변화가 전기요금에 적정하게 적기에 반영되면 소비자는 가격 신호를 따라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하고, 기업은 원가 변동 리스크 감소로 효율적 생산 관리와 이익 극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이로 인한 에너지효율 개선은 온실가스 감축으로 이어진다. 전력사업자는 재무 리스크 완화와 금융 비용 절감으로 사업 지속성을 확보하고, 국가적으로는 대체소비가 유발하는 낭비를 억제할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처럼 연료비가 하락할 때는 요금이 인하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가계와 기업에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 망설일 이유도 시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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