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급등 이어질 수 밖에”…임대차 3법 도입 ‘역대급 전세대란’ 우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2일 18시 24분


서울 강동구 ‘래미안강동팰리스’ 집주인 김모 씨(43)는 올해 10월 전세 계약이 끝나는 세입자에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세입자는 “곧 ‘임대차 3법’이 통과될 예정이니 계약이 갱신되는 게 아니냐”고 맞섰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변호사와 상담해보니 계약 종료 전 6개월에서 2개월 전에 갱신 거절을 통보하면 임대차 3법과 상관없이 새 세입자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2년 전 7억 원이던 전세 보증금을 2억 원 가량 올려 내놓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임대차 3법(전월세 신고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이 도입되면 ‘역대급 전세대란’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대차 3법을 기존 임대차 계약까지 소급 적용하더라도 김 씨처럼 계약 만료 6개월에서 2개월 전이면서 임대차3법이 도입되기 전에 세입자에게 갱신 거절을 통보하면 임대차 3법의 적용을 피할 수 있어서다.

현재 임대차 3법 관련해 다양한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 대체로 세입자에게 최소 4년 이상 거주 기간을 보장하고 임대료는 종전 계약의 5% 이내로만 올리도록 제한한다는 내용이다. 당정은 임대차 3법을 기존 계약까지 소급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그래야 임대차 3법 도입 전에 미리 임대료를 올려 전월세 가격이 폭등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급 적용을 해도 이런 부작용을 완전히 막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계약 종료 전 6개월에서 2개월 사이에 세입자에게 계약 갱신 거절을 통보할 수 있다. 임대차 3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 집주인이 갱신 거절을 통보한다면 계약 종료는 집주인의 ‘확정된 권리’가 된다. 즉 세입자가 임대차 3법을 근거로 2년 더 살겠다고 요구해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기존 세입자를 내보낸 집주인들은 앞으로 못 올릴 임대료를 미리 한꺼번에 올린 가능성이 크다.

이현성 법무법인 ‘자연수’ 변호사는 “임대차 3법이 소급 적용되어도 확정된 권리까지 침해하기는 어렵다”며 “물론 개정안에 ‘임대인이 갱신거절 통보를 이미 한 경우에도 적용된다’는 부칙을 만들 수도 있지만, 이는 확정된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어서 위헌 소지가 지나치게 크다”고 말했다.

임대차 3법이 이달 말 시행된다면 올해 10월부터 내년 1월 사이에 임대차 계약이 끝나는 세입자들이 집주인과 실랑이를 벌일 가능성이 크다. 2018년 12월 입주를 시작한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등에서 이런 사례가 빈번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2018년 10월~2019년 1월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4만3766건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임대차 3법의 혜택은커녕 도리어 기존에 살던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이는 셈이다.

이미 서울 전셋값은 지난해 7월 이후 55주 연속 오름세다. 서울 아파트 전세 구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면서 세입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올해 11월 결혼을 앞두고 전셋집을 구하고 있는 직장인 이모 씨(36)는 “어렵게 예산에 맞는 전세 매물을 찾아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올리거나 반전세로 전환하겠다고 한다”며 “결혼 전까지 전셋집을 구할 수 있을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임대차 3법은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서라도 언젠가는 필요한 법이지만 현 상황에서 도입하면 예상되는 부작용이 너무 크다”며 “전셋값 급등은 법 개정 후인 하반기에도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순구기자 soon9@donga.com
김호경기자 kimh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