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내 스위스 시계 ‘태그호이어’ 매장. 검정색 장갑을 낀 한 직원이 평균 가격이 200만 원을 넘는 시계 가운데 하나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매장에 입고되기 전 이미 1차 검수를 통해 기능상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제품이지만 기능 및 외관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온라인을 통해 비싼 럭셔리 브랜드 상품을 주문하는 수요가 늘면서 백화점과 럭셔리 브랜드 업계가 직접 배송에 나섰다. 롯데백화점은 백화점 업계에서 최초로 16일부터 럭셔리 브랜드 상품에 대한 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백화점은 최근 온라인사업부문 내에 이를 전담하는 배송혁신태스크포스(TF)팀을 신설했다.
이날 배송제품의 포장부터 고객의 집 앞까지 배송 과정을 따라가 보니 어떤 상품보다 꼼꼼하게 배송이 이뤄졌다. 검수를 마친 시계는 정품임을 인증하는 ‘보증서 활성화’ 작업을 거쳐 포장 단계에 들어갔다. 시계 주인은 전북의 한 여성. 서울에서 전북까지 이동하는 동안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완충재가 태그호이어 전용 상자 안의 시계를 촘촘히 감쌌다. 포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배송 제품 포장의 가장 중요한 단계는 봉인. 태그호이어 측은 전용 상자 입구를 검정색 테이프로 봉인했다.
포장이 완료되고 10여 분 뒤. 특수화물 전문 수송 업체인 ‘발렉스’의 보안 직원들이 나타났다. 범죄 이력 등 신원조회를 거친 이들이다. 롯데백화점 내 집하장에서 제품을 출고하는 일반 배송과는 달리 럭셔리 브랜드 제품의 배송은 배송업체 직원이 직접 매장에서 물품을 수령한다. 발렉스 직원들은 가장 먼저 포장된 박스에 붉은색 봉인 테이프를 한 번 더 붙였다. 배송지, 고객 정보 등을 확인한 배송 직원들은 파란색 박스에 제품을 넣었다. 그리고 ‘봉인 실’로 배송 박스를 또 한 번 봉인하는 ‘삼중 봉인’을 마친 뒤에야 배송 차량으로 향했다.
검정색 배송 차량도 일반 택배 차량과는 달랐다. 전용 금고, 폐쇄회로(CC)TV,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추적기, 경보기 등이 설치돼 범죄 가능성을 차단했다. CCTV는 금고 내부에 1대 등 총 5대가 설치돼 있었다. 제품은 대면 수령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배송 업체는 주문자와 사전에 배송 시간과 장소를 조율해 직접 제품을 전달했다. 주문자의 요청이 있더라도 집 문 앞에 두고 가거나 경비실에 맡기지 않는다.
이처럼 콧대 높은 백화점과 럭셔리 브랜드 업계가 배송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유통의 트렌드가 ‘배송’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문화 등을 통해 배송 문화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세대와 Z세대)의 소비 습관에 더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고가의 럭셔리 브랜드 제품도 집에서 사는 소비자가 늘어난 것. 특히 이들이 럭셔리 브랜드 소비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꼽혔던 과시 욕구를 ‘사는’ 행위보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에 ‘보여주는’ 것으로 해결한다는 것도 럭셔리 브랜드 제품의 배송을 가속화한 것으로 보인다.
백화점들은 럭셔리 브랜드 제품을 비롯해 다양한 상품에 대한 ‘배송 다각화’를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배송 형태 자체가 유통업체를 차별화하는 요소가 됐다”며 “기존 유통망의 장점은 살리면서 제품별로 다양한 배송 방식을 적용하는 실험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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