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백제의 부활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 이어갈까?[안영배의 도시와 풍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9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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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대해부 상(上)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두 왕조 국가가 별개로 도읍지로 정했던 터다. 한강을 경계로 강북의 한양도성은 조선의 수도였다. 강남에 자리잡은 하남위례성은 조선보다 1400여 년 앞서 백제 도읍지로 번성했던 곳이다. 하남위례성은 북방의 강국 고구려를 의식한 백제 시조 온조왕이 기원 전후쯤에 한강을 방어선 삼아 건설했던 도성이다.

강북과 강남은 땅의 족보도 서로 다르다. 산줄기의 시작점과 진행 방향, 종점 등을 족보 형식으로 도표화한 조선시대 책 ‘산경표’에 따르면 강북은 한북정맥에 속하고, 강남은 한남정맥에 속한다. 쉽게 말해 강남의 청계산이나 관악산은 강북의 북한산과는 그 계보가 완전히 다른 지맥(地脈)이라는 것이다.

백제의 하남위례성은 속리산을 뿌리로 둔 한남정맥의 산들이 남쪽을 받쳐주고 북쪽으로는 한강을 머리에 두고 건설됐다. 기원후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침략을 받아 웅진(공주)으로 도읍을 옮기기까지 500년 가까이 수도로 번성했던 하남위례성 시기를 ‘한성백제’라고 부른다. 따라서 ‘서울의 원조’를 따지자면 경복궁과 사대문이 들어선 하북(河北,강북)이 아니라 하남위례성이 있었던 하남(河南,강남)이 될 것이다.

역사학계에서는 대체로 하남위례성이 송파구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강남구의 삼성동토성, 하남시의 교산동토성 등도 백제 왕성과 관련이 깊은 곳이라는 해석도 있다. 흙으로 쌓아올린 이들 토성은 20세기 강남 발전의 축과도 맞닿아 있다. 역사지리학적으로 백제 토성은 강남의 흥쇠를 추론해볼 수 있는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다.

● 1500년 만에 부활한 ‘강남 백제’

한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강북과 강남은 땅의 뿌리가 다를 뿐만 아니라 발전사도 차이가 있다. 강북은 조선이 1394년 한양도성에 근거지를 마련한 후 620여년 넘게 대한민국 수도로서의 위상을 누려오고 있다. 반면 ‘원조 서울’인 강남은 백제의 천도 후 잊힌 땅이 됐다. 웅진 백제와 사비(부여) 백제에 가려진 ‘전설의 왕국’ 한성백제 땅은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박정희 정권의 강남개발 사업과 함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70년대 당시 서울시 도시계획국장을 지낸 손정목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에는 강남개발 비화가 담겨 있다. 1970년 1월 박정희 정권의 실세 박종규 경호실장은 윤진우 서울시 도시계획과장을 불러 강남에서 가장 장래성 있고 투자 가치가 있는 곳을 물었다. “탄천을 경계로 그 서쪽 일대”라는 답이 나왔다. 탄천의 서쪽인 강남구 일대는 이후 부동산 투기 광풍이 불어닥쳤다. ‘영동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이라는 이름으로 400만 평의 땅이 개발됐다. 주택과 학교, 도로 등이 건설되면서 강남 부동산 불패 신화가 시작됐다. 강남이 급격히 발전할수록 강북은 상대적으로 처지는 역전 현상도 나타났다. 2012년 가수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로 세계적 유명세까지 탄 강남은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역이 됐다.

이를 순환론적 역사주의 시각에서 보면 한성백제가 1500년만에 ‘강남 백제’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강남’이라고 할 때는 한강 남쪽에 위치한 지역 전체라기보다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아우른다. 이 가운데서 강남구가 중심축이며, 그 핵은 북쪽의 한강과 동쪽의 탄천을 경계선 삼아 건축됐던 삼성동토성 일대라고 할 수 있다.

봉은사 뒤쪽 구릉지대인 경기고교, 청담배수지공원 일대에 자리했던 삼성동토성은 하남위례성을 보호하던 중요 성곽이었다. 풍수적으로도 봉은사, 코엑스 전시관, 무역센터 등은 토성 안쪽에 해당하며 왕궁이 들어섰을 만한 명당 터로 꼽힌다.

안타깝게도 삼성동토성은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아파트와 빌딩 건설로 토성이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고, 지금은 토성 터를 알리는 표지석이 옛 영광의 흔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경기고교 동쪽 영동대로 언덕길에 세워진 삼성동토성 표지석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건국 초 한산에 도읍을 정하였던 백제는 고구려 및 신라에 대항하여 한강유역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곳 옛 삼성리 일대에서 뚝섬 맞은편까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구릉을 따라 토성을 쌓았다. 토성의 유적이 최근까지 남아 있었으나, 강남 개발로 인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 강남구는 지기(地氣), 송파구는 천기(天氣)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강남 개발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1980년대에도 계속됐다. 전두환 정권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탄천의 동쪽에 위치한 잠실지역을 개발했다. 2차 강남개발이 시작되면서 부동산 투자 열풍이 다시 불었다. 이 일대에 지어진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잠실종합운동장 등은 잠실 송파 일대가 강남구, 서초구와 함께 강남으로 묶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성백제 시기의 유적 분포도. 풍납토성, 몽촌토성, 방이동고분, 석촌동고분이 시계방향으로 원형을 이뤄 송파구의 핵심지역인 잠실역 일대를 감싸주는 모양새다. 왼쪽은 탄천 건너편으로 강남구 삼성동토성이 위치했던 곳이다.
한성백제 시기의 유적 분포도. 풍납토성, 몽촌토성, 방이동고분, 석촌동고분이 시계방향으로 원형을 이뤄 송파구의 핵심지역인 잠실역 일대를 감싸주는 모양새다. 왼쪽은 탄천 건너편으로 강남구 삼성동토성이 위치했던 곳이다.
강남구와 함께 송파구는 토성 등 한성백제 유적이 넘쳐나는 곳이다. 한성백제의 대표적 토성으로 꼽히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있고, 백제 지배계급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석촌동 고분과 방이동 고분도 있다.

이들이 있는 위치도 규칙성을 띠고 있다. 천호대교 한강변의 풍납토성에서 2km 가량 떨어진 곳에 올림픽공원으로 불리는 몽촌토성이 있고, 몽촌토성에서 다시 1.5km 떨어진 곳에 방이동 고분, 그곳에서 다시 1.3km 떨어진 곳에 석촌동 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이 네 지점은 시계방향으로 둥그런 원을 그리면서 송파구의 핵심지역인 잠실역 일대를 호위하는 모양새다.

또 이들 유적은 하늘, 신, 제사 문화와 관련이 깊은 곳이다. 민가가 들어서 있는 풍납토성에서는 송파구가 본격 개발될 때 한성백제 시기의 유물이 다량 쏟아져 나왔는데, 특히 지배층이 제사를 지내던 신전인 여(呂)자형 집터와 신성한 우물 터가 발굴됐다. 이 때문에 풍납토성이 하남위례성이며, 인근의 몽촌토성은 비상시 풍납토성을 대체하는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도 했다.

한성백제의 위대한 정복군주 근초고왕 무덤으로 알려진 석촌고분의 제3호분 피라미드. 아쉽게도 이 고분 밑으로 석촌지하차도가 뚫려 있어 유적 훼손이 우려된다.
한성백제의 위대한 정복군주 근초고왕 무덤으로 알려진 석촌고분의 제3호분 피라미드. 아쉽게도 이 고분 밑으로 석촌지하차도가 뚫려 있어 유적 훼손이 우려된다.
석촌동 고분(석촌고분공원)은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集安)의 고구려 피라미드 무덤과 흡사한 적석총 4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중 가로 50.8m, 세로 48.4m의 거대 규모를 자랑하는 3호분은 백제 전성기를 이끌어낸 정복군주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알려졌다. 실제 3호분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무덤인 호태왕릉 피라미드 못지 않은 강력한 기운(氣運)이 감도는 명당지다. 방이동 일대 구릉지대에 있는 고분군 역시 백제 지배계급의 무덤이다.

이 같은 배치는 송파 지역에 대한 백제인들의 지리적 감각이 반영된 결과로 보여진다. 풍수학적으로도 탄천을 경계로 송파구와 강남구는 다른 특징이 보여진다. 삼성동 토성이 자리했던 강남구의 삼성동과 청담동 일대는 땅의 지기(地氣)가 강성한 명당이라면, 송파구는 하늘과 소통하며 그 기운을 잘 받아 내리는 천기(天氣) 터가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강남의 운세, 지금이 절정

송파구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롯데월드타워. 2020년 현재 세계에서 5번째 높은 빌딩이다.
송파구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롯데월드타워. 2020년 현재 세계에서 5번째 높은 빌딩이다.
21세기에 재현된 한성백제의 부활과 영광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미래를 전망하기는 어렵지만 풍수학적으로는 강남구와 송파구에 들어서는 특징적인 건물들을 통해서 한가지 유추해볼 수 있다.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 지역이나 국가가 최악의 경기 불황을 맞게 된다는 ‘마천루의 저주’라는 것이 있다. 초고층이나 최고급 건물은 해당 터의 기운을 극대화해 소비한 셈이어서 이후 그 터의 기운은 쇠락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고려 시대 풍수가들은 이를 ‘지기쇠왕(地氣衰旺)’이라는 말로 풀이했다. 지기는 왕성함과 쇠락함을 반복한다는 뜻이다.

이로 적용하면 현재 강남구와 송파구는 기운이 이미 절정기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강남구에선 강남역 부근에 화려하게 들어선 삼성 사옥과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에 지어질 현대자동차그룹의 마천루(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가 정점을 보여주는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특히 2026년까지 지상 105층 규모로 건설될 GBC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송파구에선 2017년에 개장한 신천동의 롯데월드타워가 정점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지상 123층, 높이 555m에 달하는 롯데월드타워는 2020년 현재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이자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건물로 링크돼 있다.

안영배 논설위원·풍수학박사
안영배 논설위원·풍수학박사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한성백제의 기운이 강남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곳은 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하남시다. 이와 관련한 상징적인 일도 있었다. 잠실 롯데월드타워 완공과 맞물린 시기인 2016년, 하남시 감일택지지구에서 백제 지배층의 무덤인 횡혈식석실묘 50여기가 무더기로 발굴됐다. 풍납토성에서 직선거리로 5km 가량 떨어진 이 지역은 동쪽으로 3km 거리에 하남시 교산동토성을 곁에 두고 있다. 1500년의 세월을 거쳐 삼성동토성과 풍납토성(몽촌토성)에서 부활했던 한성백제의 영광이 교산동토성에서 재현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안영배 논설위원·풍수학박사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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