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경북 영천시 고경면에 있는 초아농원에서는 복숭아를 상자에 옮겨 담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복숭아는 배송 과정에서 상처가 나기 쉬운 과일. 손놀림이 조심스럽다. 포장 작업을 보는데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우리 사이 복숭복숭해.’ 박스에 쓰인 문구다. 귀농 2년 차이자 초아농원 대표인 신현돈 씨(34)는 “고객이 잘 기억할 수 있도록 톡톡 튀는 홍보 문구를 생각해 냈는데 반응이 좋다”고 했다.
약 2만6400m² 규모의 농장에서 재배되는 복숭아, 살구, 포도 등 모든 과일은 온라인 직거래로 판매된다. 신 씨가 온라인 판매에 집중한 건 도매 단위로 경매가 이뤄지는 공판장을 거치는 것보다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거란 판단 때문이었다.
“온라인으로 직거래하면 포장부터 배송까지 신경 써야 할 게 많지만 그만큼 수익이 늘어납니다. 살구를 팔 때 좋은 품질에 ‘너랑 살구 싶어’ 같은 홍보 문구까지 더하니 효과가 좋네요.”
○ 30대 46% “농업 비전 보고 뛰어들었다”
대구에서 6년간 직장생활을 하던 신 씨는 귀농을 결심하고 지난해 초 고향 경북 영천으로 돌아왔다. 농장을 열고 농업에 뛰어든 그는 온라인 직거래뿐만 아니라 2차 가공품에도 눈을 돌렸다. 살구를 동결 건조해 만든 ‘살구칩’이 대표적이다. 살구처럼 특정 시기에만 먹는 과일을 1년 내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개발한 상품이다.
신 씨는 “살구는 유통기한이 짧아 냉장 보관을 해도 3주 안에 먹어야 하는데 살구칩의 유통기한은 2년”이라며 “수확 철이 아닐 때도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 신개념 유통망으로 무장한 청년 농부들이 잇달아 농업에 뛰어들어 농촌 현장을 바꿔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귀촌한 31만7660가구 가운데 44.3%가 30대 이하 청년층이었다. 전년(43.8%)보다 비중이 0.5%포인트 늘었다. 30대 이하 귀농 인구의 46.3%는 ‘농업의 비전 및 발전 가능성’을 보고 농업에 뛰어들었다고 답했다.
창농(創農), 귀농에 나서는 청년이 많아질수록 국내 농업의 체질이 개선되고 농업이 미래 성장 동력이자 청년 실업난에 숨통을 틔우는 대안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SNS로 판로 뚫고 혁신 아이디어로 승부
송승리(33) 손다은 씨(29) 부부가 직장을 그만두고 경북 의성군 안평면으로 귀농한 건 2017년이다. 양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농부를 꿈꿨던 남편의 마음을 도시에서만 살았던 아내가 받아주면서 부부 농부가 됐다.
부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블로그를 만들어 하루도 빠짐없이 귀농 일기를 썼다. 이들이 올린 농촌의 아름다운 풍경과 일상 사진, 복숭아·마늘 껍질 쉽게 까는 법 같은 ‘꿀팁’은 도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부부의 귀농 생활에 관심을 갖던 이들은 자연스럽게 농장의 고객이 됐다.
송 씨 부부는 농장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온라인 직거래로 팔기 위해 ‘빅토리팜’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소비자들이 직접 농장을 방문해 파종, 수확 체험 등을 하는 팜파티(Farm Party)도 열고 있다. 손 씨는 “팜파티를 체험한 사람들이 빅토리팜의 고정 고객이 되는 선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가들이 있지만 송 씨 부부는 올해 상반기(1∼6월)에 온라인 직거래로만 올린 매출이 이미 지난해 전체 매출(1억6000만 원)을 넘겼다.
○ 지역 일자리 살리기에도 일조
농업회사법인 ‘청년연구소’를 운영하는 이석모 씨(29)는 ‘전천후 청년 농부’이자 ‘20대 지역 기업인’으로 불린다. 경북 청송군에서 직접 사과를 재배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 사과 유통과 가공품 개발까지 맡고 있어서다.
이 씨는 현재 직원 11명과 함께 청송 지역 농가 발전에 힘쓰고 있다. 서울 등 다른 지역 출신 직원들도 모두 청송으로 거주지를 옮겨 일하고 있다. 창업 초기인 2017년 3400만 원 수준이던 청년연구소 매출은 지난해 23억2600만 원으로 급성장했다. 이 씨는 지역 농가의 수익을 높이고 탄산사과주스 제조 특허를 받는 등 성과를 인정받아 5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하는 농촌융복합산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씨는 “갈수록 건강한 먹을거리가 중요해지고 있다. 농업에 새로운 혁신 기술이 결합된다면 미래 산업으로 충분히 성장할 여지가 있고 농부 개인의 미래는 물론이고 지역 경제를 바꿀 기회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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