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하도급 업체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한 기업은 영업비밀에 해당하더라도 회의 자료 등을 법원에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하도급 업체의 피해액을 산출하기 위한 법원의 자료 제출 요구가 강제명령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에서 관행처럼 사용되는 ‘단계적 단가 인하 약정’을 맺은 하도급 업체도 필요할 경우 하도급 대금 조정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 개정안을 마련해 10월 5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24일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공정위는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과정에 자료제출명령제를 도입해 하도급 업체의 손해액을 명확히 산정할 방침이다. 자료제출명령제는 수급사업자의 피해를 증명하기 위해 원사업자가 회의 자료 등 증거 서류를 반드시 제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현재도 하도급법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 중 법원이 문서 제출을 요구할 수 있지만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졌다. 사업자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제출을 거부하면 손해 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웠고 정확한 손해액을 산출하기 힘들다는 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가령 A업체가 일방적으로 발주를 취소해 B업체가 손해를 볼 경우 A업체가 내부 회의나 품의를 거쳐 발주를 취소하더라도 관련 회의 자료를 법원이 확보하지 못해 피해를 구체화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도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원사업자들은 법원의 자료제출 명령을 따라야 하고 사업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할 경우 하도급 업체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송 과정에서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내용은 소송 목적으로만 사용할 것”이라며 “그럼에도 영업비밀을 이유로 자료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하도급 업체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계획”이라고 했다.
하도급 대금 조정 신청 사유도 확대된다. 공정위는 원가나 관리비가 인상될 때 하도급 업체가 원사업자에 하도급 대금을 올려 달라고 할 수 있는 제도를 ‘단계적 단가 인하 약정’에도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단계적 단가 인하 약정은 자동차 업계와 부품 납품 업체 사이에 주로 사용하는 계약 방식이다. 불량률 등을 감안해 납품 초기에 단가를 가장 높게 쳐주고 연도별로 차츰 단가를 낮춰 납품받는 형태다. 이 경우 납품 물량이 당초 예상보다 떨어지면 하도급 업체의 손해가 커질 수 있는데, 공정위는 하도급 업체가 하도급 대금을 올려 받을 수 있도록 법 개정을 한다는 방침이다.
또 현재는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통해 하도급 대금 조정을 신청할 수 있는데 이를 상위 단체 격인 중소기업중앙회를 통할 수 있도록 해 하도급 업체가 협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자동차 업계에서는 입법 예고된 내용이 업계에 미칠 영향을 살펴본 뒤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10월 초까지의 입법 예고 기간에 내용을 검토한 뒤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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