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어디일까. 국토교통부의 전국 지가변동률 조사에 의하면 경기 하남시의 땅값이 6.904%로 전국 최고였다. 2위는 재개발 재건축이 한창인 대구 수성구(6.530%), 3위는 하남과 함께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경기 과천시(6.315%)가 각각 차지했다. 모두 대형 개발 호재를 안고 있는 지역이다.
땅값이 오르거나 내리는 것은 땅의 가치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풍수적으로 보면 땅의 가치와 상관관계가 높은 지운(地運)이 바뀐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지운의 변화를 예측할 수만 있다면 미래의 투자가치가 높은 땅을 선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시개발 정보 같은 외부적 변수를 배제한 상태에서 오로지 땅의 지세나 지형만 보고 지운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전통 풍수 관련 서적에서도 지운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대만과 홍콩의 일부 풍수가들은 근대에 출현한 현공풍수(玄空風水) 이론을 사용해 이 같은 요구에 대응하기도 한다. 이 이론은 산과 물이 위치한 방위를 크게 8개(동·서·남·북·동북·동남·서북·서남)로 나눈 뒤, 특정한 시기에는 특정한 방위에 있는 산과 물이 기운을 발동해 해당 지역의 지운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본다. 방위에 기(氣) 에너지가 담겨 있다고 보는 ‘방위파 풍수’의 한 종류다.
● 대길(大吉) 방위에 위치한 하남
경기 하남의 지형과 지세를 현공풍수 이론으로 해석해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현공풍수는 20년 단위로 방위 에너지가 변화한다고 계산하는데, 2020년대부터 2040년대까지는 방위상 남쪽으로 큰 산이 받쳐 주고 북쪽으로 큰 물이 감싸주는 지역을 대길한 것으로 여긴다. 하남이 여기에 해당한다.
하남은 시청을 기준으로 남쪽으로는 남한산성이 있는 남한산 줄기가 든든하게 배경을 이뤄주고 북쪽으로는 한강이 크게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하남은 이미 개발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개발이 완성단계에 달한 미사강변도시와 한창 택지개발이 진행 중인 감일택지지구, 3기 신도시로 지정된 교산지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한마디로 부동산 개발 호재가 차고 넘치는 지역이다. 특히 하남시 교산·춘궁·덕풍동 일대 648만㎡ 크기의 부지에 3만 2000가구 규모로 조성되는 교산지구는 3기 신도시 예정지 다섯 곳 가운데 가장 선호도가 높은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교산지구가 강남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준다. 서울 송파구의 중심인 2호선 잠실역까지 직선거리로 불과 8㎞ 남짓한 거리에 있다. 그간 교산지구는 금암산과 이성산이 강남권과의 교류를 가로막아 육지 속 섬처럼 갇혀 있었다. 하지만 3기 신도시 건설이 본격화되면 강남과 곧바로 연결되는 도시철도 구축, 산을 관통하는 터널 건설 등이 생기면서 막혔던 숨통이 뚫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교산지구는 주변의 택지지구와 연결돼 대규모 주거벨트를 형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교산지구 북쪽으로 3만 8000가구의 미사강변도시, 금암산 건너편 서울시계 쪽으로는 1만 4000가구 규모의 감일지구와 각각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8만 가구가 넘는 미니 신도시가 탄생하는 셈이다. 세 곳 모두 이성산과 금암산을 뒷배로 두고 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이는 강동구 고덕천 일대로 중심으로 형성되는 강동 신도시권과 일정 부분 지역이 겹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덕천 일대와 미사강변도시, 감일지구가 인접해 있어 하나의 주거권으로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도시와 풍수 ‘강남 대해부 下’편 참고).
이는 또 서울 강남의 유력한 대체지로 부상하고 있는 강동권역 주도권을 놓고 고덕천권과 교산지구권이 경쟁하는 양상을 보이거나, 두 세력마저 합친 더 큰 규모의 광역신도시가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경우 하남 중심의 강동권역은 지운상 이미 개발이 완성단계에 이른 강남 3구를 뛰어넘어 서울을 대표하는 ‘신 강남’이 될 수도 있다는 게 현공풍수적 분석이다.
●역사 스토리텔링이 도시 경쟁력
다만 하남이 강남을 대신하는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강남 사람들은 강남 3구에 산다는 것만으로 다른 지역과 구분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하남은 도시의 정체성(identity)을 정립해야 한다는 과제를 갖고 있다.
시민들이 자신이 사는 도시에 대한 정체성을 갖지 못할 경우 도시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오랜 세월 살아가는 정주(定住)할 공간이라는 의식보다 더 나은 곳으로 이사하기 위한 정거장 정도로 인식될 때, 도시의 균형 발전과 화합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지역의 역사·문화 등 콘텐츠를 개발해 시민들의 정서적 일체감과 공동체 의식을 불어넣는 일이 시급하다.
역사 콘텐츠 스토리텔링을 통해 지역이 되살아난 곳으로 서울 강북의 북촌을 들 수 있다. 청계천과 종로 윗동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북촌은 조선시대 이래 왕족과 권문세가들의 주거지로 명성이 높은 곳이었다. 서울 강북의 중심으로 우뚝 섰던 북촌은 그러나 1970년대부터 불어 닥친 강남개발로 소외되기 시작하고 1980~1990년대에는 전통 한옥이 철거되고 다세대 주택 등이 들어서면서 본격 쇠락했다. 그렇게 정체성을 잃어버렸던 북촌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옥 등록제 등 새로운 지역보존정책과 역사 문화 유적과 전통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옛 명성을 회복했다. 그리고 지금은 건축가, 미술가들이 북촌의 역사성에 매료돼 찾아들 정도로 각광받는 동네가 됐다.
하남도 북촌 이상의 오랜 역사 콘텐츠를 갖고 있다. 강남권에서는 보기 드물게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재, 유적 등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한때 하남은 한성백제의 수도 하남위례성의 유력 후보지로 지목되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은 저서 ‘아방강역고’에서 “(백제 시조) 온조왕의 옛 궁성은 본디 옛 광주읍(현재 하남)에 있어 궁촌(宮村, 현재 하남시 춘궁동)이라 불렀고, 여기에 사는 백성들은 참외를 심어 생업으로 삼았다. 여기가 하남의 위례성이다”고 주장했다. ‘택리지’를 쓴 이중한도 하남을 온조왕의 고도(古都)라고 기술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하남지역에서 왕성으로 여길 만한 유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궁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백제시대의 토성, 집터, 고분 등 백제인들의 숨결은 곳곳에 남아 있다. 4, 5세기 한성백제 귀족들의 무덤 50여 기가 발견된 감일지구 고분군은 이 일대가 백제인들의 주요 생활터전이었음을 말해준다. 이외에 하남시 광암동 고분군에서는 백제 석실묘와 함께 신라 석곽묘도 다수 나와 이 지역이 삼국시대 사람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살아왔음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여왔던 이곳이 역설적으로 삼국의 사람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만남의 무대였던 것이다.
하남에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낼 만한 소재가 많다. 교산동 선법사 경내에는 보물급 문화재인 마애약사여래좌상과 함께 바로 옆으로 ‘온조왕 어용샘’으로 불리는 샘물이 있다. 온조왕이 마셨던 샘물이라는 전설이 붙어있는 이 우물터는 역사성과 영험함으로 인해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도미부인 설화도 하남이 무대로 알려져 있다. 도미부인은 한성백제 시기 개로왕의 유혹을 물리치고 남편과의 사랑을 끝끝내 지켜낸 인물로 유명한데, 도미부인이 배를 타고 건너갔다는 도미나루가 현재의 하남시 배알미동이라는 것이다. 하남시 검단산과 남양주시 예봉산 줄기가 만나 좁은 협곡을 이뤄 한강이 흘러가는 곳을 하남 사람들은 예부터 ‘도미협’으로 불렀다고 한다.
백제의 두 왕자가 거주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성산(二聖山, 209.8m) 능선에는 사적 제422호 지정된 이성산성이 있다. 총 둘레 1925m, 면적 약 15만5000㎡로 구성돼 있는 이 산성은 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한 뒤 화강암으로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산성에 오르면 하남 시가지를 비롯해 미사강변도시, 교산지구 등 하남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 하남의 핵심, 이성산과 덕풍천
하남의 3개 신도시의 주산 역할을 하는 이성산은 풍수적으로도 눈여겨 볼만한 곳이 적지 않다. 산성 동문 쪽에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직사각형 건물터를 중심으로 8각, 9각 모양의 건물 터가 좌우로 배치돼 있다. 조사 보고에 따르면 직사각형 건물은 병영이나 창고 등 산성의 주요 시설물로 추정되고, 9각 건물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단, 8각 건물은 사직단일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매우 특이한 풍수 현상을 보인다. 불과 100m 남짓한 사이를 두고 9각형 건물터에서는 공중에서 에너지가 하강해 내려오는 천기형 기운이, 8각형 건물터에서는 지상으로 솟구쳐 오르는 지기형 기운이 각각 배어 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사람들은 땅의 기운을 읽고서 그에 맞는 건물터를 지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이다.
하남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통해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낼 자원들이 많다. 이를 잘 활용할 경우 21세기 신도시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아쉬운 점도 있다. 하남시내를 관통하는 덕풍천과 산곡천이 굽이돌지 못하고 한강으로 바로 빠져나가는 직류수라는 점이다. 풍수에서는 직류수가 땅 기운을 보강하지 않고 에너지를 뺏어버린다는 점에서 흉하다고 본다. 앞으로 건설되는 교산지구는 덕풍천을 중심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교산지구 개발을 하면서 덕풍천의 물길이 하남시를 감싸도록 하면서 미사지역과 연결시키는 작업도 검토해볼 만하다. 강동권역 대표 도시로 성장하는 키는 물길에 달려 있을 수도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