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는 안전하다? 코로나 사각지대 ‘항공기 화장실’ [떴다떴다 변비행]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8일 14시 57분




항공기는 밀폐된 공간이지만 어느 이동 수단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항공기 특유의 기내 환기 시스템과 공기 흐름 때문인데요. 항공기에서 흐르는 공기는 좌석의 머리 위에서 아래로 흐른 뒤, 기내 하단(바닥)으로 빠져나가는 구조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공기가 일종의 ‘에어커튼’을 만들어서 수평으로 흐르는 공기 흐름을 차단하죠. 즉, 바이러스가 공기중에 떠다니는 것이 아니라 발 아래로 떨어져 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바닥으로 흘러나간 공기 일부는 외부 공기와 섞여서 다시 기내로 유입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기내 공기는 헤파필터(HEPA Fliter) 라는 여과 장치를 통해 걸러집니다. 헤파필터는 공기 중의 바이러스를 99% 이상 걸러주는 여과 장치라고 보면 됩니다. 외부 공기는 항공기 엔진 압축기를 통과하는데, 이때 엔진열로 인해 공기가 약 200℃ 까지 가열된다고 합니다. 멸균 과정을 거치는 셈이죠. 또한 기내 공기는 2~3분마다 환기가 됩니다. 이런 공기 순환 시스템과 여과 장치 등이 있어서 기내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게 항공 전문가들의 설명이죠.

그런데 최근 항공기 이용객들을 조금은 불안하게 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항공기 화장실에서 무증상 감염자로부터 코로나19에 걸린 환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걸 밝혀 낸 건데요. 사실 그 동안 외국의 여러 항공사들에서는 기내 화장실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환자들이 나오고 있다는 보고가 여러차례 나왔습니다. 이런 보고를 연구 결과로 밝혀낸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 연구는 국내 의료진들에 의해서 이뤄졌습니다. 차의과학대학교 분당 차병원 소아청소년과 연동건 전문의 연구팀이 발표한 ‘항공기에서의 코로나19 무증상 감염(Asymptomatic Transmission of SARS-CoV-2 on Evacuation Flight)’ 논문인데요. 논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3월 31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인천으로 온 국적 항공기에서 총 7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환자 중 6명은 국내에 도착해 자가 격리에 들어간 직후 실시한 코로나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통상 감염 이후 증상이 발생하기까지 4~5일 이상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6명의 양성 환자들은 이탈리아에서 이미 코로나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이들은 탑승 직전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던 무증상 감염자였습니다. 증상이 있었으면 탑승 전에 검역 당국에 의해 걸려졌을 텐데 증상이 전혀 없었지요.

그런데 자가 격리가 끝나는 날인 4월 15일 또 다른 승객 A 씨가 양성 판정을 받습니다. 4월 10일쯤 기침 증세를 보였고 코로나 재검사를 했더니 양성 판정이 나온겁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A 씨는 6명의 무증상 감염자들과 기내에서 동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도착 후엔 자가격리를 받았고요. A 씨는 기내에서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었는데요. 단 한 번. 화장실을 이용할 때만 잠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해당 화장실은 무증상 감염자들도 이용했던 곳이었죠.

연구진은 A 씨가 탑승 전 이탈리아 자택에서 3주 동안 격리돼 있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한 적도 없었으며 검역 당국의 안내를 받아 비행기에 탑승하는 등 엄격한 관리를 받았던 만큼 기내 화장실에서 코로나에 감염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추가로 연구진은 4월 3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한국으로 또 다른 항공기의 탑승객 중 자가격리 14일 째에 양성 반응이 나온 환자가 한 명 더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됐고, 이 환자 또한 화장실 감염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항공기에는 공기 순환 시스템과 헤파필터라는 바이러스 여과 장치가 있어 공기 감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문제는 감염자들과의 직·간접적인 접촉입니다. 연구진은 A 씨가 화장실 내에 있던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무증상 감염자들이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배출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마스크를 벗고 화장실을 이용하던 A 씨에게 노출됐다는 겁니다. 연동건 전문의는 “무증상 환자로부터 기내 전염이 될 수 있고, 화장실 내 오염원 등으로부터 전염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화장실 변기를 사용한 뒤 물을 내릴 때, 물에 섞인 분비물이 공기 중으로 날아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제로 변기 물을 내릴 때 코로나19가 1m까지 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물을 내릴 때 변기 안에서 난류가 형성되는 등의 이유로 에어로졸 입자가 배출 되는 것이죠. 변기 밖으로 배출된 일종의 작은 물방울들은 1분 이상 공기 중에 떠다닌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떠다니던 입자들이 다른 표면에 묻거나 화장실 이용자의 호흡기에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연구진도 이런 가능성을 가장 의심하고 있습니다. 기내 화장실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연동건 전문의는 “화장실 커버를 닫고 물을 내리거나 접촉 면 위생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한다”며 “이번 연구는 기내의 사각지대인 화장실을 통한 감염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항공사나 방역 당국이 보다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항공기 화장실을 사용할 때 △커버를 닫고 물 내리기 △피부 접촉 부분에 대한 소독 강화 및 위생 커버 사용 △주기적인 화장실 소독 △마스크 미착용 시간 최소화(식사 및 양치 때만) △손 위생 철저 등을 지켜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일부 항공사들은 알코올스프레이 등으로 화장실 및 보이지 않는 좌석, 트레이 등을 소독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항공기에서 코로나에 감염될 확률은 정말 낮습니다. 그 낮은 확률을 더 낮추기 위해서는 개인과 항공사들의 추가적인 경각심이 필요합니다. 무증상 감염자가 누구인지 모르는 만큼 거리두기를 최대한 유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항공기 안에서는 어쩔 수 없이 승객 간 접촉이 이뤄질 수밖에 없죠. 상당히 어려운 문제지만 우리가 이런 위험성을 생각하고 있어야 조금 더 예방을 할 수 있을 겁니다.

해당 연구 논문은 요약본만 공개된 상태인데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발간하는국제학술지 신흥감염병저널(EID) 11월 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이 논문 요약본이 공개되자 미국 CDC 등은 소위 난리가 났습니다. 그동안 보고로만 들려오던 사례를 입증한 논문이 처음 등장했기 때문이죠. CDC 등은 국내 연구진에게 공동 연구를 제안했고, 현재 추가로 화장실 등 기내 감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CDC 저널은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이 4월에 구로 콜센터 집단 확진을 주제로 한 연구 논문의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곳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연구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환자들이 연구를 위해 자기 개인 정보를 모두 공개하는 용기와 허락이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연구에 동참해준 환자분들과 연구를 이끈 연구진들의 노력이 코로나19를 예방하는데 귀한 빛이 되길 바랍니다.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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