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이커머스 업계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는 화두는 풀필먼트(fulfillment)다. 풀필먼트는 원래 제조업이나 유통업에서 ‘고객 주문 이행(order fulfillment)’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던 용어였으나 1999년 아마존이 물류창고 명칭을 풀필먼트센터로 바꾸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커머스를 통한 상품 판매에는 재고 관리, 주문 접수, 주문에 맞춰 상품을 선별해 골라내는 피킹(picking), 포장, 라스트마일(last mile·최종 배송 구간) 배송, 반품 회수 등 다양한 물류 업무가 발생한다. 이렇게 다양한 물류 업무를 수행하는 게 풀필먼트다. 최근 이커머스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풀필먼트(e풀필먼트)가 전통적인 풀필먼트와 어떤 차이점이 있고 현재 산업 현황은 어떠한지에 대해 DBR(동아비즈니스리뷰) 8월 15일자(303호)에서 분석했다.
○ 이커머스 특성에 잘 부합
전통적인 물류센터의 업무는 대형 화주의 소품종 상품을 대량으로 보관해 이를 판매처에 대규모로 운송하는 B2B 형태다. 반면 e풀필먼트는 이커머스 플랫폼에서 판매되는 다품종 소량 상품들을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주문에 맞춰 개인에게 택배로 배송해주는 B2C 형태다.
이커머스 플랫폼에 입점한 소규모 판매자가 물류를 자체적으로 운영하다 보면 주문 시점과 상품 소싱 능력, 물류 인프라 등에 따라 배송 소요 시간이 들쭉날쭉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처럼 불안정한 배송 품질은 소비자 충성도 하락과 클레임 증가의 원인이 되기 쉽다.
반면 판매자가 e풀필먼트를 이용하면 판매 제품을 풀필먼트센터에 보관해 안정적으로 재고를 관리할 수 있고 규격화된 배송 프로세스로 인해 배송 품질을 일관성 있게 유지할 수 있다. 인건비, 임대료 등 물류 관련 비용도 사용한 만큼만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고정비를 변동비화할 수도 있다. 결국 판매자는 상품 개발이나 판매, 마케팅 등 핵심 역량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고, 이는 이커머스 플랫폼의 경쟁력 강화와 점유율 향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 풀필먼트 투자 잇따라
현재 e풀필먼트에 대한 투자는 국내외 이커머스 관련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경쟁적으로 진행되는 추세다. 네이버는 3월 판매자 편의 서비스의 일환으로 위킵, 두손컴퍼니, 신상마켓 등 물류 기반 기업에 투자를 단행했다. 쿠팡의 경우 7월 충북 음성군 금왕테크노밸리에서 1000억 원 규모의 쿠팡풀필먼트서비스 첨단물류시스템 신축 기공식을 가졌다. 일본 라쿠텐 역시 2018년 월마트와 파트너십을 발표하고 풀필먼트 서비스인 슈퍼로지스틱스와 택배 서비스 익스프레스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물류업체들 역시 풀필먼트 관련 서비스를 이미 시작했거나 속속 출시하고 있다. UPS, DHL, 페덱스(Fedex) 등은 일찌감치 자사의 이름을 내건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북미 지역에 진출하고 싶지만 현지 물류 인프라 투자 여력이 없는 중소 판매자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4월부터 국내 물류 분야 최대 기업인 CJ대한통운이 풀필먼트 서비스 본격화에 나섰다. 전자상거래 상품에 대한 전문 풀필먼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CJ대한통운 e-풀필먼트’로 서비스명을 정했다. 첫 고객사는 LG생활건강이다. CJ대한통운은 LG생활건강과 풀필먼트 계약을 맺고 네이버 브랜드 스토어에서 판매되는 LG생활건강의 상품을 고객에게 24시간 내 배송해주고 있다.
○ 밤 12시에 주문해도 익일 배송 가능
CJ대한통운 e-풀필먼트는 허브터미널과 e풀필먼트센터가 결합한 ‘융합형’ 서비스라는 점에서 경쟁 풀필먼트와 차별화된다. 보통 주문한 다음 날 상품 배송을 받으려면 전날 오후 3시 이전까지는 주문을 해야 하지만, CJ대한통운 e-풀필먼트에선 밤 12시에 주문해도 다음 날 상품을 받아볼 수 있다. 곤지암 메가허브 터미널과 붙어 있는 곤지암 e-풀필먼트 센터(국제규격 축구장 16개 규모, 연면적 11만5500m²)에 상품을 미리 입고해 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쿠팡을 제외하고 국내 대부분 풀필먼트 서비스는 라스트마일 단계를 택배 배송에 맡기는 실정이다. 그런데 택배 서비스는 택배화물을 효율적으로 취급하기 위해 보통 ‘집하→서브(sub) 터미널→허브(hub) 터미널→서브 터미널→배송’의 프로세스를 밟는다. 반면 CJ대한통운 e-풀필먼트에선 맨 처음 두 단계 과정(집하→서브 터미널)이 생략된다. 즉, 고객이 상품을 주문하면 풀필먼트센터에서 곧바로 허브터미널로 상품이 이동돼 최신 자동 화물 분류기(일 처리량 170만 상자)의 분류 과정을 거쳐 전국으로 발송된다. 당연히 줄어든 시간만큼 배송 소요 시간도 짧아지는 것. 현재 CJ대한통운은 LG생활건강 외 생활용품 전문 업체인 생활공작소, 라이온코리아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언택트 비즈니스가 전 세계적인 화두로 등장함에 따라 이커머스 수요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당연히 풀필먼트 서비스도 진화, 발전해 나갈 게 자명하다. 향후 풀필먼트 서비스는 소비자 배송 니즈가 전통적인 택배 방식에서 당일 배송, 지정시간 배송, 2시간 내 배송 등으로 다양해짐에 따라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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