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 소비자신용법 제정 추진
빚갚기 힘들땐 채무조정 요청 가능
불법 추심땐 금융회사에도 책임
일각 “채무자 도덕적 해이 우려”
회사원 김모 씨(41)는 저축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후 원리금을 연체했다가 빚 독촉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간단한 안내 문자만 오더니 추심의 강도가 점차 강해졌다. 많게는 하루에도 10번 넘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채권 추심자가 개인 채무자에게 일주일에 7회 넘게 빚 독촉 전화를 할 수 없게 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채무자가 제한적이나마 금융회사에 ‘빚을 깎아줄 것’을 요청할 권리도 갖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9일 ‘개인 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TF) 확대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소비자신용법 제정안을 발표했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채무자도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소비자신용법이 시행되면 연체 채무자가 상환을 포기하는 대신에 채무 조정을 요청해 채권금융기관과 함께 재기를 모색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권은 현재 개인 연체자가 100만 명 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 법안에는 그동안 과도한 추심에 시달리며 고통 받아야 했던 채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들이 대폭 도입됐다. ‘추심연락 총량 제한’ 도입에 따라 추심자는 채무자에게 일주일에 7번까지만 “빚을 갚으라”고 연락할 수 있다. 채무자가 추심업자에게 특정 시간대 또는 특정 방법, 수단을 통해 추심 연락을 하지 말도록 요청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월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는 직장에 있으니 연락을 하지 말라”거나 “직장에 찾아오는 대신에 근처 카페에서 면담하자”고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별다른 이유가 없으면 추심업자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채무자가 상환을 포기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빚을 갚아나갈 수 있게끔 채무조정 기회도 확대해주기로 했다. 채무자가 도저히 당장 빚을 갚을 수 없으면 금융회사에 원금 상환 유예나 감면 등 채무조정을 요청할 수 있다. 채무조정 요청을 받은 금융회사는 추심을 중지하고, 내부 기준에 따라 10영업일 내 채무조정안을 제시해야 한다. 단, 내부 기준에 따른 채무조정 적용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채무조정을 거절할 수 있다. 이명순 금융위 금융소비자국장은 “금융회사들이 거절만 남발해 해당 제도가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채무조정 요청 원칙과 거절 기준 등을 마련할 것”이라고 했다.
금융회사의 책임도 대폭 강화된다. 불법 추심으로 피해를 본 채무자가 추심업자에게 300만 원까지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법정손해배상제’가 도입된다. 이때 추심업자는 물론 금융회사도 책임을 부담해야 한다.
이번 조치로 금융회사의 연체 관리 부담과 책임이 높아지면 대출이 깐깐해지는 역효과가 생기거나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위 관계자는 “채무조정이 활성화화면 연체자들이 잠적하기보다 재기와 채무 상환을 위해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상환 여력이 있는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 10억 원 미만 실거주 담보대출 채무와 5억 원 미만 무담보 채무(신용대출)에 한해서만 법안을 적용할 방침”이라고 했다. 금융위는 설명회 및 공청회 등을 거쳐 내년 1분기(1∼3월)에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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