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부터 하반기(7~12월) 신입 행원 공개채용을 시작한 KB국민은행이 디지털 역량 평가를 대폭 강화한 채용 공고를 냈다가 지원자들의 반발에 부딪쳐 23일 오후 채용 절차를 일시 중단하는 일이 벌어졌다.
국민은행은 1차 서류전형에서 ‘디지털 사전 과제’ 항목을 신설하고 자사 서비스의 디지털 역량 강화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했다가 취업준비생들의 반발에 부닥쳤다. 국민은행은 논란이 된 부분을 필기합격자 대상 과제로 바꾸고 지원 시한을 연장하는 식으로 채용 계획을 일부 수정하기로 했다.
국민은행은 22일 오후 10시경 올해 200명 규모로 뽑는 신입 행원 채용 일정을 공개했다. 채용 절차는 지난해처럼 서류, 필기, 면접 전형으로 구성했다. 세부 항목은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서류전형 단계부터 디지털 역량을 평가하는 대목이 대폭 강화됐다. ‘일반 행원(UB)’ 지원자도 필기시험을 보려면 정보기술(IT) 지식 없이는 넘어서기 힘든 ‘디지털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우선 항목당 3000바이트 분량을 채워야 하는 자기소개서에서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클라우드, 디지털 마케팅, 오픈뱅킹, P2P(개인간거래), 기타 디지털 분야 중 본인이 자신 있는 순으로 1가지 이상을 선택하고 해당 분야를 학습했거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경험을 구체적으로 서술하라’는 마지막 문항이 대표적이다.
지원자들의 가장 큰 반발을 불러온 부분은 디지털 사전과제다. 가상 e메일 4개를 주고 “KB스타뱅킹, 리브, KB마이머니 중 KB국민은행의 디지털 역량 강화를 위해 보다 더 중요하게 논의가 필요한 서비스 1개를 선정해 3~5쪽짜리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다. 국민은행과 타사의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앱) 비교, 앱스토어 리뷰, 언론기사 검색 활용이라는 조건도 제시했다. 이 보고서 내용은 필기시험 이후 1차 면접 프레젠테이션 전형에서도 활용된다고 은행은 밝혔다.
여기에다 지원서 접수 후 정보기술(IT) 실행 능력 시험인 ‘탑싯(topcit)’의 온라인 교육과정을 총 24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탑싯은 통상 정보기술(IT) 산업이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비즈니스 이해도와 전문 기술을 활용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진단하는 시험이다. 하나은행이 지난해 하반기 공채 필기전형에서 탑싯 기반의 시험을 치른바 있지만, 일반 행원 서류전형 단계부터 탑싯이 등장한 것은 국민은행이 처음이다.
예년 수준의 채용 절차를 예상했던 취업준비생들은 크게 반발했다. 인터넷 취업준비생 커뮤니티에서 “문과 지원자들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라는 이야기” “IT직군을 뽑는 것이냐” “은행이 채용을 빙자해 아이디어를 채가는 ‘갑질’”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민은행은 반발이 커지자 공고를 낸지 17시간 만인 23일 오후 3시경 채용 홈페이지 이용을 중단했다. 은행은 논란이 큰 디지털 사전과제를 필기 전형 이후 합격자들만 제출하도록 하고 제출 시한도 연장하는 내용으로 채용 계획을 재공고하기로 했다.
은행 내부에서도 설익은 채용절차가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켰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국민은행의 채용공고가 현재 세계 금융시장 전반에 불고 있는 디지털 강화 전략에 따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국민은행 인사담당자는 “일반 영업직군이라고 해도 은행에서 나오는 앱이나 디지털 지식을 알고 있어야 고객에게 소개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모아 채용 절차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의 고위관계자는 “앞으로는 회계·재무지식만 빠삭한 인재들보다 디지털 능력을 겸비하고 있는 금융인재들의 설 자리가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