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직원 A씨는 건조하게 갈라진 손을 내보이며 분통을 터뜨렸다.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불안감에 틈날 때마다 씻다 보니 손이 모두 상했다. A씨는 “확진자가 나와 쉬쉬하니 직원도 백화점을 못 믿는다”며 “버릇처럼 손 씻는 직원이 많다”고 울상을 지었다.
코로나19가 사상 최악 수준을 이어가고 있지만 백화점의 방역 조치는 되려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초기에는 ‘감염 의심자’만 다녀가도 점포를 즉각 폐쇄하고 대대적인 공지를 하는 등 방역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장기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매출이 줄자 슬그머니 ‘쉬쉬’하는 태도로 돌아섰다는 주장이다.
반면 백화점들은 “방역당국의 지시를 철저히 준수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체계를 놓고 백화점과 노조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전문가들은 모호한 방역지침이 갈등을 키우고 있다며 보다 명확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확진자 나와도 은폐”…백화점 직원들 뿔났다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노조)은 지난 18일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백화점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시행된 이후 국내 6대 백화점에서 총 27건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롯데백화점이 13회(48.1%)로 가장 많았으며, 신세계백화점이 7회(25.9%)로 그 뒤를 이었다. 이어 Δ현대백화점(3회) Δ갤러리아백화점(2회) ΔAK플라자(1회) ΔNC백화점(1회) 순이었다.
문제는 백화점의 ‘코로나19 확진자 대응 방침’이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은 지난달 29일 직원 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사흘간 4층만 부분 폐쇄했다. 반면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이튿날(30일) 직원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자 조기 폐점하고 점포 전체를 방역했다.
백화점이 확진자 발생 사실을 인지하고도 직원에게 ‘늑장 공지’를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조는 “롯데백화점은 직원 중에서 확진자가 나와도 ‘밀접접촉자’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다가 항의를 받자 2주 뒤에야 공지하기도 했다”며 “잠실점, 부산점, 인천터미널점은 아무런 공지조차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용노동부의 ’코로나 예방 및 확산방지를 위한 사업자 대응 지침‘은 ’사업장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사업장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백화점이 지침을 위배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백화점들의 대응에 온도차가 발생하는 것은 규정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법과 방역 체계는 점포 폐쇄 여부를 사업자의 ’자율‘에 맡기고 있다. 정부 부처와 기관마다 확진자 발생 사실 전파 의무가 상이한 점도 혼란을 키우고 있다.
정부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관할 지역 사업장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각 구청 보건소에 소속된 역학조사관을 파견한다. 역학조사관의 업무는 Δ확진자 동선 조사 Δ밀접접촉자 대상 분류 Δ감염 위험도 판단 Δ방역 범위 및 기간 지정 등이다.
이중 ’방역 범위 및 기간 지정‘에서 정부와 민간 사업자의 ’이해 상충‘이 발생한다. 역학조사관은 소독·방역이 필요한 구간과 기간을 설정해 권고할 뿐이지만, 사업자 입장에서는 이를 ’폐쇄 지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점포 폐쇄 결정권을 두고 보건소와 업계의 주장이 엇갈리는 이유다.
서울시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가 집단적으로 감염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업자에게 ’폐쇄 명령‘을 내리지 않고 있다”며 “방역 범위와 시간 등 ’소독 지침‘을 제시하는 것까지만 안내할 뿐 그 이상을 결정하진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도 “지자체나 보건소에서 사업자에게 폐쇄를 명령할 권한이 없다”며 “전체 폐쇄든 부분 폐쇄든 사업장이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확진자 발생 사실 공지 대상에 대해서도 서울시와 구청은 “역학조사관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밀접접촉자에게만 전파를 하도록 안내하고 있다”며 “일반 대중에게는 구청에서 문자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통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방역당국과의 협의에 따라 위험도가 극히 미미한 경우만 아니라면 눈물을 머금고 구역을 폐쇄하는 등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전체 폐쇄든 부분 폐쇄든 방역당국과 충분히 논의해 결정하는 것”이라며 “확진자의 동선을 일일이 폐쇄회로(CC)TV로 관찰해 밀접접촉자를 분류하고 해당 구역은 철저히 폐쇄·방역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역학조사에서 감염 위험이 현저히 낮다고 결론이 나왔는데도 전체 폐쇄를 하라는 것은 가혹하다”며 “본질적으로 이익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매출과 안전의 균형을 세심하게 따져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명확한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공하성 우석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직원 1명이 확진되더라도 감염 위험성은 점포 전체에 미칠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며 “사업자와 직원, 소비자가 혼란을 겪지 않도록 당국 차원에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정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공 교수는 “코로나19 장기화로 백화점 등 오프라인 유통업계가 매출 악화를 겪고 있지만, 코로나19의 위험성과 확산성을 고려하면 보다 ’안전‘에 무게를 둔 방역체계가 필수적”이라며 “폐점 여부를 사업자에게 맡길 경우 페널티를 크게 물리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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