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차와 차 업계를 이야기하는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오늘은 올해 임금동결을 선택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위기 속에서 임금협상에 돌입한 현대차 노조는 지난 21일 기본급을 동결하는 임금협상 잠정합의안을 만들어 내고 조합원 투표를 통해 이를 확정지었는데요.
기본급을 동결한 점도 눈에 띄지만 역대 최저 수준의 성과금에 합의한 것이 핵심이라는 점과 이런 선택이 가능했던 배경을 한번 짚어보려고 합니다.
올해 초 출범한 노조 집행부가 이제는 사회적인 눈치를 좀 보자고 얘기하는 흐름의 연장선에 있는 결과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테슬라의 ‘배터리 데이’를 분석해 본 지난주 휴일차담에 보내주신 성원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테슬라 ‘배터리 데이’는 정말 ‘소문난 잔치’에 불과했을까? [김도형 기자의 휴일차(車)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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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 전 임금협상 타결…찬성율은 52.8%로 아슬아슬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은 지난달 25일에 올해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 조합원 찬반 투표를 진행했습니다.
지난달 21일 노사가 마련한 잠정 합의안은 호봉승급분 2만8000여 원을 제외한 기본급을 동결하고 성과금 150%와 코로나위기극복격려금 120만 원, 우리사주 10주, 재래시장 상품권 20만 원 등 조합원 평균 830여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 세계 금융위기가 확산 중이던 2009년에 이어 세 번째로 기본급을 동결한 합의안인데 조합원들은 52.81% 찬성률로 합의안을 통과시켰습니다.
4만 9598명의 조합원 가운데 89.6%인 4만 4460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2만 3479명이 찬성한 것입니다.
2018년에 63.4%, 지난해에 56.4% 수준이었던 찬성률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낮은 아슬아슬한 통과인 셈입니다.
절반의 찬성을 얻지 못해 합의안이 부결되면 노조는 다시 내부 의견을 모아서 추석 연휴 이후에 회사와 재협상을 벌여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노조는 기존보다는 더 많은 것을 회사에 요구해야 하는데 이미 양보할 만큼 양보했다고 얘기하던 회사와 다시 줄다리기를 하게 되면 협상이 10월 하순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올해 초 2년 임기로 새롭게 출범해서 속도감 있는 협상과 추석 전 타결을 외쳤던 노조로서는 절반을 갓 넘긴 52.8%의 찬성률 덕택에 한숨을 돌리게 된 상황입니다.
● 최근 수년 동안 기본급 인상은 ‘제한적’
외부에서는 코로나19로 산업계 전반이 위기를 마주한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가 기본급을 동결했다는 점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차 내부에서는 기본급이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도 나옵니다.
지난해의 경우 현대차 노사는 4만 원의 기본급 인상에 합의했는데요. 여기엔 호봉승급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올해도 기본급 동결을 선언했지만 2만8000여 원의 호봉승급분은 당연히 인상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지난해에도 실질적인 기본급 인상액은 1만2000원 수준에 그쳤다는 것이 됩니다.
근로자의 임금은 기본급을 베이스로 누적됩니다. 말하자면 ‘복리 효과’를 주는 셈입니다.
하지만 현대차에서는 이 기본급 누적의 폭이 제한된 지 꽤 됐습니다.
2014년 9만8000원이었던 기본급 인상액은 2015년 8만6000원, 2016년 7만2000원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2017년 5만8000원, 2018년 4만5000원, 2019년 4만 원 수준에 그쳤습니다.
제가 노조원이라면 썩 효율적인 임금 인상 방식이 아니라고 주장하겠습니다만 어쨌든 현실은 이랬습니다.
이런 흐름 때문에 어차피 기본급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 일시금 대폭 축소가 그들에게는 힘든 선택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에서는 사실 수년 동안 ‘일시금’이 중요한 이슈로 다뤄져 왔습니다.
성과금 등의 명목으로 임금협상 타결 이후에 정해진 기간에 한번에 지급되는 일종의 목돈인데요.
올해 임금협상의 경우 성과금 150%, 코로나 위기극복 격려금 120만 원, 우리사주 10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통시장 상품권 20만 원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근로자 개개인마다 다른 ‘성과금 150%’를 감안했을 때 평균적으로 830여만 원 정도라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독자 여러분들은 현대차 근로자들이 올해 임금동결을 외쳐놓고 사실은 800만 원 이상을 더 받아 간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봅니다. 올해 현대차 근로자들은 상당한 폭의 임금 감소를 감수한 것일 수 있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호봉승급분 포함 기본급 4만 원 인상에 성과급 150% + 300만 원, 전통시장상품권 20만 원이 지급됐습니다.
그리고 ‘임금 경쟁력 및 법적 안정성 확보 격려금’이라는 명목으로 근속기간별 200만¤600만 원에 우리 사주 15주 추가로 지급됐습니다.
상여금의 일부를 매월 통상임금에 나눠서 지급하는 것으로 임금체계를 개선(최저임금 문제 해결)하면서 상당한 금액의 일시금이 추가됐던 것인데요.
이런 점을 보면 올해 현대차 근로자들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에 그치는 일시금을 받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노조 입장에서 또 얘기할 수 있는 점은 올해 임금협상이 기본적으로 지난해 경영 활동 결과를 기반으로 한다는 부분입니다.
이런 논리로 지난해 임금협상은 지지난해 경영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것인데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2019년(3조6000억 원)이 2018년(2조4200억 원)의 1.5배쯤 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는 내년에 반영해야 하는 것이고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개선된 임금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있을 수 있지만 협상은 그런 식으로 흐르지 않았습니다.
● 점점 후퇴하는 임금 협상에 젊은 직원이 대거 반대표?
과반수 찬성으로 임금 협상안이 통과가 됐지만 아슬아슬했던 상황. 올해 눈에 띄는 점은 젊은 직원들의 반발입니다.
현대차 임금협상의 과거를 살펴 보면
등의 결과가 있었습니다.
결국 기본급 인상폭도 점점 제한되고 일시금도 꾸준히 줄어드는 셈인데요.
성과금 명목으로 지급되는 일시금을 별도로 지급되는 ‘플러스 알파’로 생각하는 근로자가 얼마나 될까요.
매년 일정한 규모의 일시금이 꾸준히 지급돼 왔기에 일종의 임금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차 근로자들은 실질적으로는 임금이 줄어들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누적된 호봉이 크지 않은 젊은 직원들이라면 급격한 일시금 감소에 ‘내가 입사할 때 생각했던 임금 수준이 아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올해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는 젊은 직원의 비중이 큰 남양연구소 등에서 반대표가 쏟아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전국의 각 공장과 남양연구소 등으로 완전히 투표함을 분리해서 개표하지는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남양연구소의 투표함이 포함된 개표에서는 반대가 60%를 넘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는 것인데요.
이 때문에 직원들 사이에서는 투표함을 완전히 분리해서 개표하라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듯 합니다.
● 완성차 노조도 ‘사회적인 눈치’를 본다?
이런 분위기와 반발을 노조 집행부가 모를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임금 동결’이라는 합의안으로 조합원들에게 찬반을 물으면서 집행부는 ‘사회적 고립’에 대한 걱정을 얘기했습니다.
합의안을 도출한 이후 내부 소식지에서 이런 논리를 편 것을 통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합의안이 조합원 요구에 부합하지 않는 걸 안다. 하지만 정치, 사회, 경제적 여건이 최악이다. 이 합의안 부결시키고 파업에 나서면 사회적으로 매도당한다. 협력업체와 자영업자가 죽을 지경인데 5만 조합원 이익을 위해 총파업에 나서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다.”
제가 조금 편집한 것일 뿐 실제로 노조 소식지에 담겨 있는 표현들입니다.
저는 ‘사회적 조합주의’를 표방한 이번 노조가 이런 부분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금 더 달라고 투쟁만 해서는 사회적 ‘왕따’를 벗어날 길이 없다”는 생각과 함께 사회적으로 눈치 좀 보자는 말을 대놓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업도, 근로자도, 노조도… 사회에서 독립된 상태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현대차가 생산하는 자동차는 기업에게 파는 물건도 아니고 개별 소비자에게 파는 물건입니다.
어렵다, 어렵다하지만 현대차는 여전히 연간 수조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기업이 맞습니다.
조합원들이 일정한 몫을 요구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영업이익의 규모는 꾸준히 줄어들고 있고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적극적인 투자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고임금으로 비난 받아온 노조에 대한 비난의 수위가 심각할 정도로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사회적인 현실을 외면하고 내 몫과 투쟁만을 외쳤을 때는 사회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은 꽤 타당해 보입니다.
자동차 업계에서 현대차 노조의 행보를 유독 주목하는 이유는 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인만큼 다른 완성차 기업의 노사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국내 주요 완성차 기업 중에서는 기아자동차, 한국GM, 르노삼성자동차 등이 올해 임금협상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체로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에서 임금협상을 진행해 온 기아차의 경우 추석 연휴 이후에 비교적 순조롭게 임금협상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국GM과 르노삼성차의 임금협상에는 현대차의 임금협상 결과가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사실 한국GM에서는 이미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법적인 요건을 다 갖춰놓았는데…
다른 완성차 노조에서도 “우리도 눈치 좀 보자”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요? 한번 지켜볼 만한 문제 아닐까 싶습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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