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자동차가 중고차시장 진입 의지를 밝힌 가운데 동반성장위와 중기부도 중고차 매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 해제를 검토 중이다.
현행 중고차시장이 불투명하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은데다 수입차들이 이미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어 ‘역차별’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기존 중고차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지만 둑이 터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다.
김동욱 현대차 전무는 지난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감에 출석, “중고차 시장에서 제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을 포함해 70∼80%는 거래 관행이나 품질 평가, 가격 산정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며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완성차가 반드시 (중고차) 사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역시 지난달 9일 인증중고차 부재와 성능·상태 점검 부실, 불투명한 가격 등으로 인해 중고차 시장 전반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이 여전히 높다는 점을 지적하며 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입에 힘을 실었다.
자동차산업협회는 특히 국내 시장에서 국산 완성차업체들이 인증 중고차 사업을 하고 있는 수입차에 역차별받고 있다며 빠른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자동차산업협회 정만기 회장은 “중고차 경쟁력이 신차의 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한 점을 감안할 때 완성차업체가 제조에서 판매·정비·중고차 거래까지 체계적 고객관리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며 “국내 완성차업체들의 중고차시장 진입을 규제하는 수입차와의 역차별은 조속 해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회장은 이어 “국내 완성차업체들이 철저한 품질 관리, 합리적인 가격산출 등 객관적인 인증절차를 거친 중고차 제품을 공급하는 것을 보장하면 소비자 역시 안심하고 중고차를 거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게 된다”고 밝혔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후 대기업 시장 참여가 제한돼왔다. 기존에 SK엔카를 운영하던 SK그룹은 이로 인해 사업을 매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관련 규정이 일몰됐고, 지난해 11월에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중소벤처기업부에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중기부는 중고차 판매업을 생계형 적합업종으로 지정하지 않는 대신 대기업과 소상공인단체간 상생협약을 맺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8일 산자위 국감에서 중고차 매매시장의 대기업 진출에 대해 ‘독점 방지’ 단서를 달아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박 장관은 “산업 경쟁력, 시장 규모 등 측면에서는 중고차 매매업이 생계형 적합 업종 규모를 넘어선다”며 “디지털 시대를 맞이해 온라인 판매가 대세를 이루고, 변화를 이루며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해 생계형 적합 업종 부적합에 무게를 실었다.
다만 박 장관은 “독점이 문제”라며 “한 브랜드가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경우가 특이한 케이스다.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보다 독점을 방지하면서 상생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등 대기업의 독점을 방지하고, 상생할 방안을 찾을 수 있다면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업 진출을 허용할 수 있다는 취지인 것으로 분석된다.
기존 중고차업계는 대기업이 시장에 진입할 경우 중고차 가격이 지금보다 상승해 소비자가 피해를 떠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달부터 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반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연합회는 현대·기아차 본사 사옥 앞에서 지난달 1일부터 1인 시위를 시작한데 이어 9일에는 9인 집회를 시작했다.
연합회 곽태훈 회장은 “자동차 제조사가 판매와 유통까지 담당하는 전세계 유례없는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중고차 매매까지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중고차 매매업은 대기업 진출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고차업계 관계자는 “대기업이 중고차를 판매하는 것도 문제지만, 양질의 중고차 매물을 선점 독점할 것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결국 가격 인상으로 인한 부담은 고스란히 소비자가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내 중고차 시장이 연간 380여만대가 거래되는 약 30조원 규모에 이르는데다 외국기업과의 역차별, 국내 소비자들의 편의성 등을 감안하면 대기업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시장은 대기업의 중고차사업 진출이 허용되면 현대캐피탈과 중고차 경매시스템을 운영 중인 현대글로비스 등을 계열사로 둔 현대자동차그룹, 쏘카의 2대 주주 SK그룹 등이 빠른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쏘카는 온라인 중고차 판매 사업 진출을 추진키로 하고, 특허청에 ‘캐스팅’이라는 브랜드의 상표 출원을 했다.
현대차그룹의 경우 이미 중고차 경매장을 운영하며 도매 유통을 하고 있는 그룹 계열사 글로비스가 중고차사업을 맡을 가능성이 높다. 글로비스는 지난 3월 중고차 매매업체 전용 디지털 경매 시스템 ‘오토벨 스마트옥션’을 론칭했다. 이에 따라 분당?시화?양산 경매장에서 중고차 매매업체를 대상으로 주 1회 이뤄지던 중고차 경매가 온라인으로 실시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기존 업체들과의 상생을 위해 중고 인증 제도를 활용한 오픈 플랫폼을 만들어 기존 중고차 매매업자들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중고차 인증제를 통해 소비자의 신뢰를 높이고 차량 생애주기 전체를 관리,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