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대출신청하러 갔더니… “적금 들어라, 카드 만들어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4일 03시 00분


은행들 3건에 1건꼴 ‘끼워팔기’

“아무래도 빌리는 입장이니까 눈치 보이죠. 혹시 서류 처리가 잘 안될까 봐….”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인근에서 안경점을 운영하는 A 씨(51)는 4월 정부에서 지원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소상공인대출’ 3000만 원을 신청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매출이 평소보다 60% 이상 줄었기 때문이다. A 씨는 이날 은행에서 신용카드도 하나 만들었다. 새로운 카드가 필요하진 않았지만 대출을 담당한 은행원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했다.

서울 종로구에서 치킨가게를 운영하는 B 씨(58·여)도 은행을 찾았다가 비슷한 제안을 받았다. 2000만 원의 코로나19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창구 직원이 ‘적금’ 상품을 제안했다. 이 씨는 서류 처리 도움을 받는 처지이니 적금을 하나 들어줘야 한다고 부담감을 느꼈지만 형편이 되지 않아 거절했다.

시중은행들이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에게 정부 자금으로 대출을 해주는 과정에서 3건에 1건꼴로 신용카드 보험 적금 등의 금융상품을 함께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코로나19 대출 관련 시중은행 점검결과’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실행된 1, 2차 코로나19 대출 67만7000건 중 다른 금융상품에 함께 가입한 대출이 22만8000건으로 전체 대출의 34%를 차지했다.

코로나19 대출 신청을 받으며 함께 판매한 금융상품으로는 신용카드 발급이 17만 건으로 가장 많았다. 예금·적금과 중도 해지 시 원금 손실이 가능한 보험·투자상품도 각각 6만9000건, 6218건이었다. 은행별로는 IBK기업은행이 9만6000건(42.1%)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하나은행(3만6000건), 우리은행(2만9000건), 농협은행(1만5000건), 신한은행(1만3000건) 순이었다.

김 의원은 코로나19 사태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위한 대출에 금융상품을 함께 판 것은 경영난을 겪는 대출 상담자들을 실적 쌓기에 이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용카드를 만들면, 연회비를 내야 하기 때문에 정부 자금으로 금융사들의 수익을 돕는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반면 은행들은 합법적인 교차 판매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상품에 가입할 때 우대 조건을 거는 등 강제성이 없어 ‘꺾기’(대출을 조건으로 고객에게 예금 보험 등의 가입을 강요하는 것)나 ‘끼워팔기’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상적으로 금융상품 가입을 권유했고 자발적으로 상품을 가입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이상환 인턴기자 성균관대 글로벌경제학과 4학년
#소상공인#대출신청#적금#카드#끼워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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